본문 바로가기

수원시 글로벌 평생학습관

통합검색

열린마당

언론보도

[관장보도자료]조영호 교수의 Leadership Inside 249_당신은 어떻게 메모를 하시나요?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23.04.04
조회수
620

대학교수를 하다 한 기업의 임원으로 간 S 씨가 있다. 그는 사장이 주재하는 임원 회의 때 별로 적지를 않는다. 대신 생각을 많이 한다. 이런 모습을 보고, S 씨를 아끼는 선배 임원이 조언을 했다. “다이어리를 가져왔으면, 열심히 적는 게 좋지 않을까? 사장이 말씀하시는데도 당신은 멀뚱히 쳐다보고만 있으니 옆에서 보기 민망스러워. 정 싫으면 쓰는 척이라도 해.” 그 조언을 듣고 다음 회의 때 다른 사람을 열심히 관찰했다. 아니나 다를까. 윗분이 이야기할 때는 죄다 열심히 쓰는 것이었다. 토씨 하나도 놓치지 않을 기세로 말이다.

 

가끔 TV에서 대통령이 주재하는 국무회의 장면을 보게 된다. 그 회의 장면도 거의 비슷하다. 대통령은 이야기하고 국무위원들은 적는다. 오죽했으면 ‘적자생존’이라는 말이 나왔을까? 다윈의 적자생존(適者生存)이 아니라, ‘적어야 살아남는다’는 그 적자생존 말이다.

 

S 씨가 전혀 적지 않는 게 아니다. 그는 중요한 키워드를 메모하고, 낙서도 한다. 그리고 가끔은 네모와 원을 동원하고 화살표를 넣어 흐름도를 그린다. 다만, 남의 이야기를 무작정 받아쓰는 일을 하지 않는다. 그는 남의 이야기를 기록하는 것보다 자신의 이야기, 자신의 생각을 기록한다. 그래서 그가 하는 메모는 생각을 돕는 일이다. 그도 학창 시절에 교수의 강의나 세미나 발표자 이야기를 열심히 적어 보았다. 그런데 그렇게 하다 보니 오히려 발표 내용의 핵심을 파악하기 힘들고 또 자신이 생각할 여유가 없었다. 그래서 기록하는 방법을 바꾼 것이다. 

 

우리나라 제1호 기록학자로 알려진 명지대 김익한 교수는 기록은 두 가지 방향에서 이루어진다고 이야기했다(김익한, 거인의 노트, 2023, 25쪽). 하나는 외부 정보나 지식을 기록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내부의 생각이나 마음을 기록하는 것이다. 필자는 전자를 ‘흡수형 기록’이라 하고 후자를 ‘인출형 기록’이라고 부르고자 한다. 흡수형 기록과 인출형 기록은 둘 다 중요하고, 둘은 서로 주고받으면서 시너지를 만들어야 한다. 아무리 외부에 좋은 지식이 있다고 해도 그것이 ‘내재화’되지 않으면 의미가 없고, 아무리 내가 좋은 생각을 했다고 해도 그것이 ‘외부화’되지 않으면 성과를 낼 수 없다. 그런데 우리 조직안에는 흡수형 기록에만 치우치는 사람이 너무 많다. 그렇게 되면 창의성이 발휘될 수 없고, 집단지성이 생길 수도 없다.

 

오랫동안 법무법인 대표를 지낸 W 씨는 이 문제를 심각하게 생각하고, 가끔은 아예 다이어리를 들고 오지 말게 하고 회의 자료도 나눠주지 않고 회의를 했다. 이렇게 하니 참석자들은 하는 수 없어 생각을 하게 되었고, 또 그 생각을 교환할 수 있었고 나아가서 새로운 방향을 찾을 수도 있었다.

 

기록은 중요하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업무적으로 그리고 개인적으로 수많은 일을 경험하는데 기록하지 않으면 이것들이 모조리 사라지고 만다. 물론 일부는 머릿속에 살아 있겠지만, 극히 일부에 지나지 않을 것이고, 시간이 지나면 이것도 왜곡되어 남아 있을 가능성이 크다. 기록은 정보를 보존하고 기억을 확장하는 일차적인 기능을 하지만, 우리의 삶을 의미 있게 만들고 또 우리를 성장하게 한다. 김익한 교수는 더 나아가 기록을 함으로써 우리는 인생의 주인이 된다고 했다. 이 말이 맞는 것 같다. 

 

필자는 강의자료를 준비하다가 아이들 어렸을 때 가족회의 했던 일이 떠올랐다. 언제 어떻게 했고, 무슨 이야기들을 했는지 가물가물했지만 제대로 떠오르지 않았다. 그러다가 그때 작성한 회의록을 짐 속에서 발견하게 되었다. 첫애가 초등학교 4학년 때 시작한 일이었다. 주 1회 회의를 했는데 회의 내용이 고스란히 기록되어 있는 것이었다. 어떤 날은 영어로 기록한 날도 있었다. 회의록을 발견한 우리 가족의 기쁨은 말할 수 없었다. 단지 기록을 찾아서가 아니라, “우리가 제대로 살고 있구나” 하고 느낄 수 있었기 때문이다. 우리의 존재가 뚜렷해지는 순간이었다.

 

그런데 기록을 너무 어렵게 생각하고 부담을 느끼는 사람도 많다. 그렇다. 제대로 기록하려면 엄청난 노력이 필요한 것이 사실이다. 그래서 부담 없이 기록하는 방법을 찾는 것이 필요하다. 일단 기록이 아니라 메모를 해야 한다. 키워드 중심으로 적고, 자신의 느낌이나 생각을 중심으로 적어두는 것이다. 그러면서 그 메모를 가끔 들여다보면서 생각을 덧붙이거나 추가로 정리하면 좋다. 그러다가 시간을 내서 메모를 바탕으로 해서 긴 글을 쓸 수 있다. 이렇게 되면 기록이 되는 것이다. 그런데 그것은 선택이다. 메모만으로도 훌륭하다.

 

사장부터 메모하는 습관을 보이면 어떨까? 인출형 기록이 되게 말이다.

 

choyho@ajou.ac.kr


[원문보기][조영호 교수의 Leadership Inside 249]당신은 어떻게 메모를 하시나요?

Quick menu