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실에서 아이들이 왁자지껄하게 떠든다. 그때 문이 스르르 열리며 젊은 엄마가 5개월짜리 꼬마 아이 토마스를 안고 교실로 들어선다. 교실은 금세 조용해지고, 아이들은 호기심 어린 눈이 모두 토마스에게로 향한다. 토마스는 엄마 품에서 버둥거리며 엄마 가슴께를 발로 찬다. 교실 아이들이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환영의 노래를 부른다.
토마스는 엄마 품에서 반 아이들 모두 하고 인사를 나누고 초록 카펫에 엎드린다. 학생 중에 희망자가 토마스 옆에 누워서 토마스와 똑같은 자세를 취하며 어떤 느낌이 드는지 이야기한다. 그리고 토마스가 장난감을 만질 때는 학생들도 장난감을 만지며 아기가 어떤 느낌이 들 것 같은지 대화한다.
학생들은 토마스에게 먹을 것을 준다. 토마스가 싫어할 때까지 말이다. 그리고는 서로 이야기를 나눈다. 토마스는 정말 배가 부를까? 왜 토마스가 배가 부르다고 생각하는지 각자의 의견을 나눈다.
어떤 학생은 “토마스가 머리를 옆으로 돌렸어요”라고 이야기한다. 다른 아이는 “토마스가 숟가락을 밀쳤어요”라고 한다. 또 다른 아이는 “토마스가 입을 꾹 다물었어요” 한다. 학생들은 이런 대화를 나누면서, 꼬마의 표정과 동작과 행동이 많은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는 것을 깨닫는다.
캐나다에서 시작된 ‘공감의 뿌리’(ROS: Roots of Sympathy) 교육 장면이다. 공감의 뿌리는 유아 교육자 메리 고든(Mary Gordon, 1947~)에 의해 1996년 개발되어 캐나다 토론토에서 처음 실행되었다.
유아원부터 8학년(중학교)까지 나이에 맞추어 프로그램이 진행되는데, 기본은 1년 미만의 갓난아이들이 엄마와 함께 3주에 한 번씩 교실을 찾아오고, 학생들은 이 꼬마를 통해 많은 것을 경험하고 또 학습한다. 1년 동안 말이다.
공감의 뿌리에서 꼬마는 단지 함께 시간을 보내는 것 이상이기 때문에 ‘꼬마 교사’라고 불린다. 학교로 찾아오는 꼬마 교사는 학교가 위치한 동네에서 선정이 된다. 마을 전체가 애정을 가지고 이 교육을 이끌어가야 하기 때문이다.
공감의 뿌리 교육에서는 “공감해야 한다.” “공감이란 무엇인가?” 같은 추상적이고 일반적인 이야기는 하지 않는다. 다만, 태어난 지 일 년도 안 된 아기를 보면서 그 아기의 느낌과 생각을 짐작해보는 노력을 하고 경험을 나눈다.
그 아기가 다른 사람에게서 나쁜 말을 들었을 때 어떻게 반응하는지, 혼자 따돌려졌을 때 또 어떻게 하는지 관찰하면서 자신들의 문제를 되짚어 보는 시간을 갖는다.
감성교육을 하는 데는 이처럼 꼬마 아이들과 시간을 보내게 하는 것이 최고다. 꼬마들은 말을 할 수가 없다. 인지 능력도 발달하지 않았다. 오로지 감성을 표현하고 몸동작으로 의사 표현을 한다. 그래서 꼬마 아기들의 표정과 몸동작을 잘 관찰하지 않으면, 그들이 어떤 마음인지 어떤 의도를 전달하려 하는지 알 수가 없다. 공감의 뿌리 교육은 3주에 한번씩 교실에서 꼬마 교사를 만나지만, 그것으로 그치지 않는다. 그 전주에는 준비를 하고, 그 다음 주는 복습하고 성찰하는 시간을 갖는다.
이런 과정을 통해 학생들의 감성능력과 사회성이 길러진다. 조사에 의하면, 프로그램을 경험한 학생들은 도와주기, 받아들이기, 나누기 등의 친사회적 행동이 각각 78%, 74%, 71% 증가했다. 따돌림과 같은 공격적 행동은 39% 감소했다. 캐나다에서 시작된 이 교육은 미국, 영국, 뉴질랜드 등 14개국으로 확산하였으며, 한국에도 2019년 도입되었다.
어른이 되면, 인지가 발달하고 언어표현이 섬세해진다. 감정도 1살짜리 꼬맹이처럼 울음이나 표정으로 나타내지 않는다. 고상하게 말로 한다. 그러다 보니 감정을 숨기기도 하고, 왜곡하기도 하고, 무시하기도 한다. 어른이 되었다고 해서, 언어와 문자로 소통한다고 해서 결코 감정이 사라지지 않는다. 논리 이전에 감정이고, 언어 이전에 본능적인 느낌이다.
어른이 되었어도 감정은 대부분 비언어적으로 표출된다. 상대의 비언어적 표현을 읽을 줄 알아야 하고, 나의 감정을 비언어적으로 잘 전달할 수 있어야 한다. 캘리포니아 대학 메라비언 교수는 자신의 연구를 통해, 언어로 소통하는 것은 7% 정도에 지나지 않고, 목소리는 38%, 보디랭귀지는 55%나 된다고 했다. 공감은 말을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시각적인 몸동작을 이해하는 것이고, 청각적인 신호를 잘 포착하는 것이다.
리더가 스스로 공감능력을 높이려면, 말 못하는 아기들이나 반려동물과 시간을 보내면서 그들의 행동을 더 유심히 관찰하고 소통해보는 것이 어떨까.
choyho@ajou.ac.k
[원문] [조영호 교수의 Leadership Inside 231]공감한다는 것, 공감 능력을 기른다는 것:화성신문 (ihs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