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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기획단 나침반 기획강좌] 너라는 오브제 ① 술래 바꾸기_김지승 작가

작성자
신연정
작성일
2023.11.15
조회수
559



너라는 오브제 ①: 술래 바꾸기_김지승 작가

술래 바꾸기: 여성과 오브젝트

2023년 11월 8일 수요일 저녁 7시, ‘너라는 오브제’ 첫 초대 손님 김지승 작가의 강연이 열렸다. 김지승 작가는 에세이 ‘아무튼, 연필’, ‘짐승일기’를 통해 친숙한 언어를 낯설면서 유려하게 표현하며 돌봄, 권력, 여성의 경험 등을 다양한 관점으로 사유하는 작가다.

올여름 출간한 작가의 신간 ‘술래 바꾸기’는 ‘의자’, ‘모빌’, ‘수건’ 등 일상 속 친숙한 사물_이하 오브젝트(Object)를 낯설고도 아름답게 담은 에세이다. 여성주의저널 ‘일다’에 연재한 글을 다듬고 보강해 엮은 책으로 오브젝트에 대한 작가의 시선이 어디에 있는가를 살피면 이 책의 특별함을 알게 된다. 대게 오브젝트에 대한 작가의 관찰이나 사색, 추억에 관한 글일까 싶지만 그게 다가 아니다. 오브젝트가 나에게 가져다준 기억과 그 사이에 연결된 무수한 관계에 대한 이야기다. 내가 한 방향으로 어떤 오브젝트를 보는 것이 아니라, 오브젝트가 나를 바라보기도 하고 또 다른 타자를 데려오기도 하며 과거와 미래가 혼재된 기억과 시간이 뭉쳐지기도 한다. 주어의 자리에 꼭 ‘나’가 있지 않고 목적어의 자리에 꼭 ‘너’ 또는 어떤 오브젝트가 있지 않다. 종래 사람(나) 중심의 문법을 넘어 전혀 다른 방식의 사유를 요청하는 책이다. 강연을 들으며 이 같은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

김지승:
“저한테 이 책은 누군가에게 의자를 내어주는 일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독자분들께 이 책은 원래 있던 무언가의 기능을 좀 빼고 다른 가치를 보게 하고 싶어서 쓴 글이에요. 그렇게 처음에 ‘의자’로 시작하게 됐습니다.”

[의자]
20쪽
“도롱이 할머니에게서 배우지 않았나, 힘들면 의자 내려놓고 쉬었다 가면 된다. 내 의자가 없으면 다른 여자 의자를 빌리면 되고, 그 의자는 또 다른 여자에게 갚으면 된다.”

‘의자는 움직이는 여성성의 거처’란 작가의 표현대로 십여 쪽 정도의 글 안에 도롱이 할머니를 포함한 여성 노인들과 독일 다뉴브강변에서 만난 여성, 안/한나 그리고 K 등 무수한 여성들이 각자의 사정을 안고 ‘의자’에 몸과 마음을 얹는다. 아니 ‘의자’가 그녀들의 ‘기억’을 가져다준다.

김지승:
“왜 ‘여성과 사물’이 아니고 ‘여성과 오브젝트’예요? 라고, 물어들 보세요. ‘사물’이라고 할 수도 있고 ‘대상’이라고 할 수도 있고 우리가 흔히 얘기하는 ‘물건’이라고 할 수도 있을 겁니다. 그런데 오브젝트가 갖고 있는 굉장히 다양한 의미가 있어요. 한 단어 안에 대단히 많은 관계가 숨어 있는 거예요.
...
어떤 단어들의 의미를 단일하게 생각하시기보다는 이 의미가 어떤 관계를 맺고 있는지 왜 그래서 어떤 관계에서 이 의미가 도출됐는지를 좀 생각해 보실 필요가 있습니다.”
...
“사람들은 다채롭게 이해하고 싶어 하지 않아요. 여력이 없어요. 그래서 안전한지 내 편인지 아닌지 옆에 둬도 도움이 될지 안 될지를 빨리 그냥 파악하고, 되게 단편적으로 사람을 그렇게 만들죠.”
...
“모빌의 균형과도 닮았다고 말씀을 드렸는데 여기서 말하는 균형이 바로 그거잖아요. 관계. 내가 관계를 어떻게 맺을 것인가 그게 균형을 잡는 거예요.”

[모빌]
32쪽
“모빌은 그 모든 불안을 닮아 있었다. 중요한 건 불안 뒤의 균형과도 그렇다는 점이었다. 모빌은 움직임이자 멈추지 않는 균형의 시도였다.”

김지승:
“이 세계의 사유가 방향을 바꿔서 이들이 우리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고 우리가 지금 이제 이 망해가는 지구 행성을 살리는 데 있어서 혹은 우리가 조금 더 이 생명을 유지하는 데 있어서 어떤 영향을 줄 것인가라는 질문으로, 질문이 바뀌기 시작했어요.”

한 방향에서 쌍방향, 아니 모든 방향에서 나와 세계는 관계 맺고 연결돼 있다. 주어의 자리에 인간만을 더는 세우지 말자는 이야기, 상호 관계를 이해해야 어쩌면 이 망가진 지구를 더 해치지 않을 거란 얘기다. 질문을 바꿔라, 다르게 사유하란 이야기다.

김지승:
“삶과 죽음 하면 너무 자연스럽게 삶은 너무 좋은 거고 죽음은 너무 나쁜 거로 생각하시는 분들이 많은데 상호 보완적인 거예요. 그냥 죽음이 없으면 삶이라는 말을 만들 필요가 없어요. 그렇죠? 그러니까 이 가치에 대해서 무조건 이건 좋은 거 이건 나쁜 거라고 하는 어떤 것을 없애고 이분법적 사고를 없애고 이것이 서로가 어떻게 관계 맺는지를 보는 거예요”
...
“인간은 과거 현재 미래라는 되게 선형적인 시간이 있고 태어나서 죽는다는 것을 굉장히 선형적으로만 이해를 해요. 그래서 이 세월이 쌓인다는 거를 그냥 늙는다고 표현해버리시죠.. 근데 사물은 어때요? 그 시간이 축적되어서 되게 아름다워져요. 사물의 시간의 의미는 사람과 굉장히 다릅니다.”

[수건]
45쪽
“우리는 아슬아슬하게 특정 단어와 기억을 피했다. 수건이라든가 술래라든가 따돌림 같은 말들…. 어떤 기억에 관해서는 계속 술래다.”

김지승:
“우리는 그 기억에 관해서는 어쨌든 계속 술래로 있어요. 그리고 그거를 매개해 주는 사물이 등장하기 전까지는 나에게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나고 내가 어떤 삶을 사는지를 사실 잘 모릅니다.
이 사물을 이해한다는 거 우리가 오브젝트 하고의 관계를 맺는다는 것은 어떤 힘 있는 주류들의 논리나 이데올로기에서 벗어난 어떤 관점을 갖는다는 의미하고 같습니다.”

‘수건’이 담고 있는 에피소드에는 다시 K가 등장한다. 반장과 반 아이들에게 따돌림을 당하다 전학을 가버렸던, 어쩌면 학기 내 영영 술래였을지 모를 K가 전학생이었던 나에게 술래 자리를 물려주었다. 반 아이들의 폭력적인 이 룰에 잠깐 맞서봤던 나는 그냥 술래가 되었고 이후 오랫동안 반장 보다 도망간 K가 왜 더 미웠는지 생각한다. 주류들의 논리, 이데올로기에서 벗어난 어떤 관점을 그때의 나와 K가 가졌더라면 어땠을까? ‘수건’이 가져다준 잊고 싶은 기억 같은 걸 누구나 갖고 있다. 술래가 돼 주지 못했던, 내 뒤에 수건이 놓이지 않기만을 불안하게 빌었던 날들이 함께 소환되었는데, 꼭 잊지 않아도, 도망가지 않아도 된다는 이야기로도 들려 안심되었다.

작가와 함께하는 짧은 글쓰기로 강연은 마무리되었다.

Q) 원래의 기능은 사라졌지만 버리지 못하는 사물이 있나요?
그 사물이 전하는 기억은 어떤 것인가요?

참여자들은 다양한 오브젝트를 떠올렸다.
첫사랑의 편지/ 시댁 어른의 유품/ CD 플레이어/ 첫 조카에게 떠준 목도리/
아이가 태어나 처음 신은 덧신/ 하늘나라로 떠난 반려견의 옷/

이들이 나와 어떻게 연루돼 있는가? 처음엔 이 생각만 하다가 아니지 작가님 말대로 오브젝트가 데려온 다른 관계들을 떠올려 볼까? 이야기는 더욱 풍부해지고 세상에 대한 생각은 뾰족해지는 느낌이다.
참여자의 발표와 생각 나누기까지 이어졌다. 어느새 한 시간 삼십 분 강연이 끝났다.
눈에 보이지 않던 화살표들이 반짝인다. 사람과 각종 사물과 공기와 웃음 등이 각자의 연루를 주장하며 반짝인다. 세상의 약한 것들을 함부로 대하지 않는 마음도 이런 세상의 연루를 알 때 가능하다. 김지승 작가는 책과 강연을 통해 이런 이야기를 하고 싶었나 보다.


[시민기획단 나침반 기획강좌] 너라는 오브제

너와 나를 연결하고, 무수한 그 사이에서 탄생한, 이야기를 탐험합니다.

● 일 시: 11월 8일~11월 23일(4회) 저녁7시~8시 30분(90분)

● 장 소: 고고장 하나

● 초대 손님:

11.08(수) 김지승 / 술래 바꾸기

11.09(목) 김혜진 / 너라는 생활

11.22(수) 이서수 / 젊은 근희의 행진

11.23(목) 최진영 / 해가 지는 곳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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