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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체와 철학하기’ 수강을 마치고

작성자
김형숙
작성일
2022.05.29
조회수
1154
<니체와 철학 하기> 수강을 마치고 

 Amor Fati ! 「나는 나로 살기로 했다」그야말로 도끼와 같았다. 
“우리가 읽는 책이 우리 머리를 주먹으로 한 대 쳐서 우리를 잠에서 깨우지 않는다면, 도대체 왜 우리가 그 책을 읽는 거지? 책이란 무릇, 우리 안에 꽁꽁 얼어버린 바다를 깨뜨려버리는 도끼가 아니면 안되는 거야.”라는 프란츠 카프카의 말처럼, 니체의 책들은 도끼 중에서도 날이 잘 벼려진 위험하고도 강력한 도끼였다. 

 수원 평생학습관의 <니체와 철학하기>를 통해 무게감이 남다른 철학자 니체에게 한발 다가가기를 시도했다. 이 강좌는, 지난 3월 중순부터 5월까지 10차시에 걸쳐, ‘들어는 봤으나 제대로 알지 못하는’ 니체의 대표 저서 8권에 담긴 사상과 사유 체계를 니체가 살았던 시대적 맥락 안에서 소개한 프로그램이다. 줌으로 이루어지는 대부분의 강좌가 일회성 특강 형식이거나 길어야 5차시 정도를 넘지 못하는데, 10차시라니 ? ‘제대로 공부해 볼 기회가 되겠군.’ 기대와 설렘이 컸다. 첫 시간, 니체가 절대 하지 말라던 짓을 했다. 니체를 ‘우러러보며’ 연신 고개를 끄덕였으니 말이다. 

니체는 '(한 사람의 사상이나 행동을) 숭배하거나 추종하지 말라, 숭배와 추종은 박제(剝製)이며 하나의 도그마가 되고 만다.'라며 그 누구도 영웅이 되는 걸 경계했지만, 사유(思惟)는 커녕 생각의 방법조차 제대로 모르는 나는 니체가 던지는 질문과 새로운 시선에 그저 감탄했다. 사춘기를 심하게 앓던 시기부터 40여 년간 나를 괴롭힌 것이 제사와 종교 문제였다. 여성의 ‘허리가 끊어질 정도’의 고강도 노동집약적인 과정을 통해 차려지는 제사상에 나는 늘 의문이 들었다.

 ‘왜 남성의 조상을 위한 제사에 여성의 노동력이 제물이 되어야 하나?’ 제사를 놓고 형제 사이에 분란이 이는 여러 경우를 보면서는, ‘왜 부모가 죽어서까지 자식들을 괴롭히게 되는 걸까?’ ‘제사가 정말 좋은 거라면 서로 차지하겠다고 난리일 텐데, 그 반대이니 도대체 이건 누구에게 좋은 걸까?’ 한 시대를 지배했던 가치가 지금 내게도 붙들고 살 만한 가치가 있는 걸까?’ 

자라나는 의문과 질문은 나를 혼란스럽게 했다. 혼란은 내면의 갈등을 일으켰고, 제사를 치르고 나면 꼭 몸 어딘가가 탈이 났다. 그때서야, 나를 괴롭하는 질문에 대한 내 대답을 찾느라 ‘생각’이라는 걸 하기 시작했다. 친구 따라 교회에 처음 갔던 그 날(초등학교 6학년 때였던 듯)의 분위기가 아직도 기억 난다. 교회와의 첫 만남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던 날, ‘죽어서 지옥 가면 어쩌지?’ 라는 두려움이 내내 따라왔던 것 같다. 성인이 되어서도 기독교가 이 세상을 해석하는 방식인 종말론적 세계관은 나를 자유롭지 못하게 했다. ‘원죄를 가지고 이 세상에 던져졌으니, 이곳에서 나를 구원해줄 메시야를 기다리며, 이 세상을 견뎌야 한다. 그리스도를 통하지 않고는 구원받지 못한다.’는 출발점이, 선택지가 하나뿐인 ‘답정너’ 같은 굴레로 다가왔다. 구원의 방법이 있으니 천만다행(?)이라고 생각해야 할까? 그런데, 그게 마치, ‘세상에 태어나고 보니 노예의 자식이고, 노예를 벗어나는 길은 나를 소유한 주인님의 마음에 드는 수밖에 없다.’ 라는 벗어날 수 없는 사슬에 묶인 것 같았다. 

나의 의지로는, 내 방법으로는 자유를 얻을 수 없다는 말처럼 들려 무력감을 느끼기도 했고 시간이 지날수록 우울했다. 태어나기도 전에 부모가 진 엄청난 빚을 생애 내내 갚다가 끝날 것만 같은 아득함도 찾아왔다. 니체는 이 닫힌 세계관을 비판하며, ‘왜 꼭 그리스도가 죽어야만 구원이 이루어지는가, 왜 다 같이 살아서 같이 구원을 받을 수는 없는가’ 라는 질문을 던지며, 예수나 석가, 공자와 같이 (세상의 가치와) 전혀 다르게 살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한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이 기쁜 소식(福音)이라고 말한다.

 “모든 시대에 걸친 모든 사람을 구원하는 절대 진리란 없다. 각자는 자신의 방식으로 자신의 삶을 살아가기 위해 끊임없이 질문을 던지고 변화해가는 여정에 있다.” 라는 니체의 말은 오랫동안 묶여있던 ‘불경(不敬)한’ 내 사고의 둑이 터지게 만들었다. 나는 해방감을 맛보았고, 나를 짓누르던 죄의식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단군신화는 믿지 않으면서, 창조 신화는 의심없이 받아들였던 나를 다시 보기 시작했다. 니체는 ‘짜라투스트라’의 여정을 제5의 복음(福音)이라고 이름 붙였다. 그의 저서 ‘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가, 전혀 다른 가치를 가지고 살아갈 수 있음을 나타내는 책이니 기쁜 소식 아니겠느냐고 말한다. 동의한다. 적어도 내게는 나의 질문과 의문이 잘못된 게 아니고 자연스러운 것이라고 격려하는 복음이고, 나의 삶을 살아가기 위한 여정에 위로가 되기에 충분하다. 

 한때 엄청난 인기를 얻은 가요에 ‘내 세상은 너를 알기 전과 후로 나뉘어.’ 라는 가사가 있다. 그 간지러운 문장을 빌어 표현하자면, 나의 행동 방식은 ‘니체를 알기 전과 후’로 나뉜다. 제사와 종교 문제에 스스로 시달리며 사회가 요구하는 가치들이 진정으로 내 삶에 가치가 있는 것들인지, 그 가치들을 나 또한 가치있다고 생각하는 것인지, 그 가치들이 내가 나로 살게 하는데 도움이 되는 것들인지- 고민하느라 늘 머릿속이 시끄러웠다. ‘당연하다’고 의심없이 받아들이며 적응해서 살던 내게 니체의 질문과 사유(思惟)는 천둥과 번개처럼 강력했고, 얼음장을 깨는 도끼와 같았다. 주어진 것들을 그저 ‘성실’하게 ‘책임감’ 있게 해내던 굳어진 사고 체계와 순응의 더께를 한 자루의 도끼가 찾아와 평온해 보이던 내 세계를 박살 내었다. 

 “제사가 그렇게 중요하면,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직접 준비해라”고 선언했다. 이 점에서 니체는 ‘전복(顚覆)적인 철학자임이 분명하다. 하지만, 두꺼운 얼음장을 깨야 그 밑에 유유히 흐르는 맑은 물이 있듯, 나에게도 사고(思考)의 강이 흐르고 있음을 응시할 수 있어 무척 기뻤고, 내 생각의 필터를 거쳐 내 행동을 선택할 수 있는 시발점(始發點)이 되었다. 한편으로 두렵기도 하지만, 한 세계를 창조하기 위해서는 기존의 세계가 파괴되어야 한다는 말을 실감한다. (이제야 ’파괴의 역설‘을 체험하다니, 좀 늦은 것 같기도 하지만) 이번 강좌에 소개된 8권의 니체 저서를 관통하는 단어는 결국 ‘자유’ 라는 생각이 든다. 

기존의 가치 체계들을 의심하고 질문하며 끊임없이 자신의 생각을 발전시키고 존재 변신을 해가는 여정이 인생이며, 이 끝없는 변화가 종국에는 그 무엇에도 걸림이 없는 ‘자유’를 가져다주는 게 아닌가 싶다. 

 ‘존재하는 것은 계속 ‘되어감’이다. 나는 아직 완성되지 않았고, 되어가는 ‘과정’에 있으며, 내 삶의 목표는 ‘나 자신이 되는 것’이다.’ 라는 내 삶의 방향성을 일깨워준 니체에게 감사하며, 그 니체의 사상을 2022년 현재와 연결하여 보다 쉽고 구체적으로 풀어준 프로그램의 채운 강사님과 수원평생학습관에 무한 감사를 보낸다. 

비평 공간 ‘규문’의 대표인 채운 강사님의 니체 저서 해설은 달을 가리키는 손가락과 같다. 그 손가락을 통해 달이 어디 있는지를 알았으니, 이제 달을 바라볼 차례다. 그 달이 어떻게 어두운 주변을 밝히고 얼마나 아름다운 것인지, 아니면 들었던 것보다 별 볼 일이 없는 것인지 직접 감상해보아야겠다. 니체를 숭배하거나 추앙하는 것이 아닌, 니체가 강조한 내 인생의 문제를 절실한 내 삶의 질문으로 접속해보는 첫 발을 시작해봐야겠다. 

도서관으로 향하는 마음이 설렌다. ‘피곤하게 살게 될’것이 분명하지만, 기꺼이 그 ‘피곤’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다. 진정한 공부의 시작이다. 2022. 5. 29(일)
댓글 1
김은영 2022.06.08

후기 감사합니다!^^ 니체에 대해 공부할 수 있는 기회가 또 있었으면 좋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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