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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침반 돌봄강연] 돌봄의 분노와 애정

작성자
권미숙
작성일
2022.05.02
조회수
1136
2022년 4월 21일 목요일 오후 7시 30분, 나침반 기획강좌 <돌봄이 없는 돌봄> 6번째 강연 이주혜 작가의 “돌봄의 분노와 애정”이 Zoom으로 열렸다. 이주혜 작가는 번역가이자 소설가로 2016년 창비신인소설상을 받으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오늘 함께 나눌 이야기는, 소설 <자두> 속 돌봄 노동을 둘러싼 가족 내 갈등과 소외와 에이드리언 리치의 산문 <분노와 애정>에 묘사된 돌봄을 향한 양가감정에 관한 것이었다.

“이 강의를 계속 들어왔는데 강의하시는 선생님들께서 굉장히 좋은 말씀 많이 해주시더라고요. 그래서 저는 오늘 편안하게 이야기를 나눠보는 시간으로 해보겠습니다.”

실제로 이주혜 작가는, 이 <돌봄이 없는 돌봄> 강연 1회차부터 한 번도 빠지지 않고 수강생으로도 참여해왔다. 강연자가 수강생이 되고 수강생이 강연자가 되는 강연. 정말 다정한 상황이 아닐 수 없다.
소설 <자두>는, 뉴욕에서 보스턴으로 가는 돌만의 대화에 빠져 하트퍼드 분기점을 지나 스프링 필드까지 내쳐 가버린 두 여자의 밤길에서 출발한다. 이 두 여자는 에이드리언 리치와 엘리자베스 비숍이라는 미국의 두 시인이다. 둘 다 미국 사회에서는 굉장히 유명한 시인들이고 각각 퓰리처 상과 같은 굵직한 상을 받으면서 많은 사랑을 받았다. 이주혜 작가가 직접 번역한 <우리 죽은 자들이 깨어날 때>의 에이드리언 리치와 엘리자베스 비숍의 만남이 주인공 나와 영옥의 만남으로 이어진다.
나의 남편 세진은 한부모 가정의 아이였다. 일찍 어머니를 잃은 것이다. 시아버지는 며느리인 나를 처음에는 탐탁치 않게 여겼지만 결혼 후에는 꽤 좋은 시아버지가 되었다. 누가 봐도 좋은 시아버지 같았지만 그 속내는 시아버지의 간병이 시작되면서 서서히 드러나게 된다. 병세가 깊어져 섬망 증세가 나타나면서 며느리를 향한 진심이 쏟아져 나오기 시작한 것. 박사인 아들에 비해 부족하고, 아이를 낳지 못해 대가 끊겼다며 막말을 내뱉는다. 이런 상황 속에서 남편은 나에게 아무런 도움도 되어 주지 못한다.
하지만 간병인 영옥은 유일하게 나를 위로해 주었고, 영옥의 등장으로 나와 세진은 조금이나마 일상을 회복할 수 있었다. 하지만 얼마 안 가 시아버지와의 불화로 영옥은 해고를 당하고 남자 간병인이 새로 온다. 새로 구한 이 남자 간병인은 영옥에 비해서 굉장히 불성실하다. 그런데 영옥보다 일당은 더 비싸다.
얼마 후 시아버지는 돌아가시고, 장례를 치른다. 장례식에 온 친인척들이 쏟아 붓는 모진 말들(ex.너희가 모시고 살았어야 한다, 안 모시고 살아서 이렇게 된 거다 등)을 듣고 세진은 울면서 잘못했다고 한다. 그 말을 들은 나는 상처를 받고 결국 장례 후에 이혼을 한다. 이 소설에서 이주혜 작가가 말하고 싶었던 것은, 결국 돌봄이라는 건 어느 가족이나 어느 집단 안에서는 반드시 필요한 일이라는 것. 그런데 항상 가족 안에서 이것이 공평하게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것. 소설 속에서도 며느리나 또는 하루 8만 원을 주고 고용한 여성 간병인인 영옥에게 이 노동의 의무가 좀 더 치우쳐져 있다는 것이다. 게다가 그것을 너무 당연하게 생각을 하고 어떤 급한 결정을 해야 되는 상황이 생길 때는 그 과정에서 은근히 배제되는 존재가 딸 혹은 며느리라는 것이다. 간병이라는 것들이 항상 그런 식으로 가부장제와 결탁을 하면서 불필요한 상처를 주지 않는가, 그래서 우리는 그 상처를 받는 과정에서 서로를 너무 이해하고 싶지만 이해하지 못하는 아픔을 겪고 있지 않은가 하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고 전했다.

<분노와 애정>이라는 산문은 에이드리언 리치가 쓴 주옥같은 산문이다. 리치는 일기를 많이 쓴 것으로도 유명하다. <분노와 애정>에서도 자신의 일기를 발췌한다.

‘아이들은 지금껏 겪지 못한 가장 절묘한 고통을 안겨준다. 양가감정이라는 이 고통은 이스라엘의 분노와 바짝 곤두선 신경 그리고 행복에 감사와 애정 사이를 살인적으로 오간다’고.

“어느 관계든 어머니와 자식과의 관계든, 남편과 아내의 관계든 또는 부모와 자식의 관계든 정말 매순간 24시간 언제나 상대방을 사랑하는 인간관계는 사실 존재하지 않는 것 같아요. 그런데 존재한다고 주입을 받아온 거죠. 우리가 거기에 만족하지 못하면 항상 죄책감을 느끼는 그런 악순환의 고리 이게 바로 이제 리치가 말하고 싶었던 분노와 애정의 악순환이었던거죠.”

아이 셋을 낳고 전쟁 같은 육아 시절을 마친 후 어느 정도 편해졌다고 생각했을 때, 리치의 남편은 자살을 한다. 그때 리치는 이렇게 선언을 한다. “우리는 이혼과 남편의 자살을 함께 겪어낸 생존자다. 정말 힘들었지만 우리 네 사람은 그 시절을 견뎌냈다.” 그러면서 자신의 경험을 어느 정도 얘기를 하고 “가부장제 안에서 모성은 당연한 게 아니다.”라는 주장을 하기 시작한다. 70년대 미국에서는 꽤 혁신적인 주장이었다.

리치는 평생 자신의 어머니와 화해하지 못한 삶을 살기도 했다. 리치의 어머니는 가부장적인 남편의 억압 아래 평생 억눌린 삶을 살았다. 리치는 어머니를 미워했다. 공부 안 한다고 피아노 연습 안 한다고 어머니가 자꾸 혼내고 가두었기 때문이다. 어머니가 자신에게 했던 행동이 학대였다고 생각을 한 것이다. 실제로 학대가 맞았고 그 위에 아버지가 있었다는 것도 나중에야 이해를 한다. 하지만 자신의 감정은 이미 상할 대로 상해 있었기 때문에 어머니가 돌아가실 때까지 화해를 하지 못했다고 한다.
어머니의 희생은 어머니 자신에게도 치욕이었지만 결국은 여성으로서의 삶을 보여주는 또 다른 상처일 수도 있고. 딸의 삶까지도 훼손하는 행위일 수도 있다. 그래서 가부장제에서 딸을 양육하려면 어머니는 자신을 양육해야 된다. 자신의 삶부터 보살펴야 한다. 딸들은, 용기 있는 어머니의 보살핌을 원한다. 그리고 그런 어머니가 되어야 딸들에게도 힘을 물려줄 수 있다. 그래서 한 여성이 다른 여성을 위해 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일은 내 삶을 확장하는 것, 즉 희생자가 되기를 거부하는 것이다. 어머니로서 내 삶부터 바로 세워야 딸의 삶도 역시 바로 세울 수 있다 우리 딸들에게는 자신의 자유와 우리의 자유를 모두 원하는 그런 어머니가 필요하다. 리치는 이런 주장을 해온 것이다.
그렇다면 꼭 ‘어머니’가 되어야만 이런 권력을 가질 수 있는 것이냐? 리치는 꼭 그렇지만은 않다고 말한다. 잘못된 양극화일 수 있다고 말한다. 오히려 이성의 제도에 복무하는 것밖에 되지 않는다. 샬롯 브론테, 에밀리 브론테, 조지 엘리엇, 버지니아 울프 등만 봐도 그렇다. 여성끼리 연대해야 이 가부장제 사회의 어떤 억압 이런 것들을 우리가 더 뚫고 나갈 수 있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에이드리언 리치의 시집 소개
- 난파선 속으로 잠수하기
- 공통언어를 향한 꿈


마지막으로 이주혜 작가는 좋아하는 시의 구절을 소개하며 강연을 마쳤다.

“마지막 시는 21개의 사랑 시라는 연작시가 있어요. 이 지상의 밤은 한 생명체이자 여행자 우리죠. 여행자에게 분명히 끝까지 닿기 원하는, 같은 여정에 있는 여행자들에게는, 점점 차가워진다는 세상은 그렇다는 거죠. 이 세상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점점 차가운 곳이에요. 그래서 다정함이 없으면, 우리는 지옥에 있음을. 즉 이 차가운 세계를 돌파할 수 있는 또는 생존해 낼 수 있는 유일한 힘은 ‘다정함’, ‘연대’다. 다정함이 없으면 우리는 지옥에 있어요. 이 대목이 저는 너무 좋아서 한때는 외우고 다녔어요. 그래, 다정해야 돼. 우리는 서로 다정해야 돼. 미워하면 안 돼. 연대하자. 이런 생각을 하면서요.”

다음 강연은 2022년 4월 27 수요일, <저녁은 온다>라는 주제로 지난 2년간 252명의 시골 어르신 댁을 찾아가 방문 진료한 강원도 왕진 의사 양창모 선생님이 돌봄과 노년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준다.
댓글 1
권용은 2022.05.10

이주혜 작가님 강의 잘 들었습니다. 강의 듣고 <자두>를 단숨에 읽었습니다. <소설보다 > 2022년 봄 호에 이주혜 작가님 소설이 마침 있어서 그 작품도 읽었답니다. 에이드리언 리치 < 우리 죽은 자들이 깨어날때>는 빨리 읽히는 책이 아니라 천천히 읽고 있습니다. 교육후기 를 올려주셔서 생각을 정리하기에 도움이 되네요.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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