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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침반 돌봄 강연]영 케어러와 돌봄 사회, 조기현, 청년 보호자 영 케어러의 이야기를 듣다.

작성자
유승연
작성일
2022.04.07
조회수
1181



시민기획단 나침반의 2022년 봄 기획강좌 "돌봄 없는 돌봄" 세번째 이야기, "영케어러와 돌봄사회"는 한 장의 서류에서 시작한다. 연대보증인이 서명해야 하는 입원동의서. 9년 전 아버지가 뇌졸증으로 쓰러져서 대학병원 응급실로 실려왔을 때 조기현 작가는 (만 24세 이상이어야 하는) 연대보증을 설 수 없었다. 만 19세였기 때문이다.
그렇게 시작된 아버지와의 동행 이야기는 2019년 <아빠의 아빠가 됐다>라는 책으로 세상에 나왔다. 그는 자신을 "영 케어러"라고 부른다. 질병.장애 등 여러 가지 이유로 가족을 돌보는 30세 이하의 청년을 의미한다.
빛나고 싱그러운 "젊음"에 "돌봄"을 붙이니 먹먹해진다. 친척에게 연대보증을 부탁해 아버지를 입원하게 하고 천만 원의 월세보증금을 빼서 병원비를 내면서 스무 살 청년은 무슨 생각을 했을까?

"아버지를 버리지 않고 아버지의 삶을 돌보면서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포기하지 않는 방법은 없을까?"

지금처럼 장기요양 제도가 폭넓지 않았던 9년 전, 이 부자가 붙잡을 수 있는 제도는 거의 없었다. 설사 있다 해도 불가능에 가까운 서류를 요구했다. 조기현은 아버지의 장애와 집안의 가난을 증명하기를 요구하는 행정기관의 신청 서류를 쓰레기통에 버렸다. 거기서부터 시작했다.
그는 하나씩 자신의 것을 포기했다. 대학을 포기했고 취업을 포기했다. 비영리단체에서 잠시 일한 경험은 대한민국 복지 영역 현실의 서늘한 온도를 깨닫게 해주는 계기였다. 그가 포기하지 않은 것도 있었다. 아버지를 버리지 않았고 아버지를 위해 강아지를 계속 키웠으며 영화 일을 하겠다는 꿈을 접지 않았다.
미장일을 하는 아버지가 작업하는 모습을 다큐멘터리 영화로 만들었다. 그리고 자신과 같은 처지의 영 케어러들을 찾아다니며 연대를 모색하기로 결심했다.


"젊은 돌봄제공자로 질병 중인 아버지를 돌보면서 가장 힘들었던 점은 무엇인가요?"

경제적인 것도 행정적인 것도 만만치 않았지만 그를 가장 힘들게 한건 "고립감"이었다. 그것이 연대를 결심한 이유였다. 결과적으로 이 고민이 돌봄제공자로써의 그의 삶을 지탱해주는 하나의 기둥이 되었다. 영 케어러의 일방적인 희생으로 이어지는 돌봄이 아니라 돌봄을 받는 아버지의 삶의 의미를 생각해보는 과정에서 그는 능력주의 사회의 이면을 보았다. 돌봄없이는 주체적으로 살아가는 독립적인 존재로 성장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우리 모두는 누군가의 돌봄으로 성장했고 살아가고 사회의 구성원이 된다. 하지만 가정 내에서 이루어지는 사랑과 헌신에 기초한 무급의 돌봄의 가치를 계산하는 셈법을 능력을 최우선의 가치로 중시하는 자본주의 사회는 제공하지 않는다.
조기현의 고민은 연대에 이어 돌봄 민주주의로 확장되었다. 시민의 권리와 의무를 중시하는 민주주의를 돌봄에 이식하면 돌봄을 받을 권리와 돌봄을 제공할 의무가 시민에게 부여된다. 우리는 한때 누군가의 돌봄을 받았고 언젠가 돌봄을 제공할 의무가 있다. 국가는 이러한 돌봄의 의무의 가치를 급여나 보장으로 인정하고 대만 등 일부 국가에서 시행 중인 대체복무제로의 돌봄 복무제를 시행할 수도 있다. 사회의 성장이 고도화되면서 좋은 일자리가 점점 사라지고 수명이 연장되면서 일자리를 둘러싼 세대 갈등이 첨예해졌다. 중장년 일자리로 돌봄 제공자는 또 하나의 선택지가 될 것이다. 국가의 적절한 개입은 가정 내에서 고립된 돌봄 제공자에게 일방적으로 강요되는 고통스러운 돌봄 노동을 밝은 곳으로 이끌어내고 발전적인 논의를 계속할 계기가 될 것이다.

친정 아버지는 장기요양 제도의 수혜를 받지 못하고 말기암으로 투병하다가 돌아가셨고 두 분의 시부모님은 장기요양 등급을 받아 주간호보센터에서 낮시간을 보내면서 여생을 편안하게 보내며 점점 인지 저하가 진행되고 있다. 친정 엄마는 아직은 인지 상태도 정상적이고 독립적인 생활이 가능하지만 여기저기에서 노화와 질병이 진행되는 징후가 나타나고 있다. 언젠가 장기요양 등급을 신청할 수도 있고 요양시설로 가게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우리 모두는 언젠가 나이가 들고 노인이 되고 병들며 누군가의 돌봄이나 보호를 필요로 하게 된다. 아무리 부정해도 결과는 마찬가지이며 완벽하게 준비한다고 해도 닥쳐올 일들을 모두 대비할 수는 없다. 그러면 우리는 인생의 마지막 시기에 무능하고 가치없고 의존적인 존재로만 인식될 것인가? 돌봄 민주주의 사회의 시민으로써 내가 제공했거나 기여했던 돌봄과 관련된 서비스를 정당하게 받는 것으로 인식될 것인가? 오늘 9년간의 돌봄을 이어온 영 케어러 조기현이 묻는다.
댓글 1
노윤영 2022.04.10

아들이 혼자 아버지를 돌보며 병원, 동사무소를 뛰어다닌 시간이 고스란히 느껴지는 강연이었어요. 십 년의 돌봄 경험이 기록으로 이어져 시민들과 만난 것 같아요. 작가님이 언급한 돌봄 민주주의가 빨리 공론화되면 좋겠어요. 승연샘의 생생한 후기 덕에 강연날이 떠오르네요. 잘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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