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겸재 정선의 조선의 산천을 재발견하다

작성자
김소라
작성일
2013.03.18
조회수
5883



[3월 시민광장] 겸재 정선-조선의 산천을 재발견하다

 

그림은 왠지 평범한 소시민들이 범접하기 어려운 예술인 것 마냥 생각된다. 특별한 사람들의 전유물처럼 아직도 여겨지고, 미술관에 가는 것은 일상스럽지 않다. 하지만 정선, 김홍도, 신윤복이 그린 250년의 그림들이 지금의 나와 소통하고 연결되어 있다면 믿겠는가? 그림을 보는 이유는 예술적인 지식, 교양을 쌓기 위함이 아니다. 그림을 그린 이의 마음을 이해하고, 당시의 시대와 사회를 엿보는 일이기도 하다. 또한 수 백 년 전의 사람들의 삶이 지금의 나와 다르지 않음을 이해하고, 오늘을 잘 살기 위한 배움을 얻는 시간이기도 하다.

 

수원평생학습관의 도요새 책방, 시민사회자료관에서는 매달 신선한 주제의 강연을 맛볼 수 있다. 올 상반기에는 특히 [인문으로 읽는 우리 그림]이라는 테마로 조선 후기 대표적인 작품을 들여다보는 시간을 갖는다.

 

인문으로 읽는 우리 그림

3월 겸재 정선 <조선의 산천을 재발견하다>

4월 단원 김홍도 <노동과 일상 속의 이야기를 발굴하다>

5월 혜원 신윤복 <인간의 욕망을 들추다>

6월 일제강점기 전쟁미술 <죽음과 복종의 미학과 예술의 자살>

 

 

4번의 기획 강좌는 한 달에 한번 이어진다. 4번 모두 탐나는 주제들이어서 한 번도 빼놓을 수 없을 것만 같다. 특히 4, 5월에 김홍도와 신윤복의 그림에서 춘화에 대한 이야기를 질펀하게 해주신다고 하니, 기대가 크다. 4번의 강연 모두 민족문제연구소의 박한용 교수가 진행한다. 친일인명사전 편찬위원이면서 성프란체스코 대학의 인문학 강좌 교수로 재직하시는 강사님의 편안한 그림읽기 강의로 빠져들어 가보자.

 

첫시간, 겸재 정선의<조선의 산천을 재발견하다>는 중국의 것에서 벗어난 진경산수화로의 시대적 변혁을 읽을 수 있었다. 오늘의 강의 자체가 책 속에 갇힌 지식이 아닌, 지금의 나와 연결되고 살아있는 듯했다.

 

불국사는 예술적인 불교건축물일 뿐일까요? 사실 불국사를 제대로 보기 위해서는 부처님의 마음이 담긴 집이라는 생각을 단 1분이라도 자비의 마음으로 보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사찰을 볼 때는 본질을 보아야겠죠. 문화재는 단지 오래되거나 희귀한 것만이 아닙니다. 그 속에 든 사람들의 마음과 생각, 가치관을 읽어내어야 합니다. 마찬가지로 경복궁은 어떤 마음으로 보아야 할까요? 바로 왕의 마음입니다. 유교적 가치로 구현해 낸 통치이념이 왕이 기거하는 집에 담겨져 있는 것이죠. 인문학은 바로 소통입니다. 마음을 주고받는 일이죠. 그리고 공감입니다. 연결된 듯한 느낌을 갖는 찾는 것입니다. 소통과 공감이라는 관계성 속에서 인간의 보편성을 이해하게 됩니다."

 

강의의 전반부에 인문학을 이해하는 하나의 키워드를 제시하면서 문화재를 어떻게 보아야하는지 설명한다. 그림의 형식, 화풍, 도구, 예술성 등은 중요하지 않다고 말한다. 교과서에서 기계적으로 설명된 내용에서 탈피하여 그 속에 담긴 함의를 찾는 것. 역시, 그림 보는 법도 배워야 하는구나를 절실히 느끼게 된다.

 

 

조선전기화가 이정근의 <미법 산수도>

 

제일 처음 보여주신 그림은 조선시대 문인화가인 이정근의 <미법 산수도>. 정선 이전의 그림들은 대부분 중국의 화가가 그린 그림을 베끼는 수준이었다. 화첩을 보고 그대로 모방하여 베껴서 그리는 것도 굉장한 의미가 있었던 시절이다. 지금은 당연히 베끼는 그림은 표절시비가 붙고, 창의성이 없다고 평가한다. 하지만 당시 조선은 중국을 모든 학문의 중심으로 숭상하였기에 미술도 마찬가지였다. 조선 중기까지 강남산수화라는 그림은 양자강 이남 중국 남쪽의 습하고, 강수략 많고, 물이 많은 지역의 산과 강을 표현하였다. <미법산수도>에서 역시 중국의 산과 강이다. 강사는 이 그림에서 풍경만 볼 것이 아니라 그린 사람의 마음을 읽어보라고 요구한다. 안개처럼 그윽한 산과 강, 비가 오면서 뿌연 시야를 보여주는 그림. 그 안에 작은 집이 있고, 집 안에는 사람이 있다. 바로 강호에 묻혀서 속세와 떨어져 사는 선비다. 그런데 이름 모를 초야의 선비를 찾는 이가 있다. 우산을 쓰고 산과 강을 건너 선비를 찾아가는 모습이다. 아마도 이름 모를 선비는 안개처럼 그윽하게 살고자 하는 사람일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흠모하는 사람들이 끊임없이 찾아온다. 뜻이 있는 사람은 멀리 떨어져 있어도 서로 알아본다는 의미일까. 바로 산수화 속에 감추어진 화가의 인격마음을 찾을 수 있다고 전한다.

 

 

조선의 산천을 그린 화가 정선

 

그렇기에 겸재 정선이 위대하다. 조선시대 문인화가, 직업화가들이 모두 중국의 산수를 그렸던 시절 정선은 직접 우리의 산천을 보고, 그림을 그렸기 때문이다. 역시 어느 나라, 문화에서든 새로운 시작은 혁명적인 변화를 의미한다. 중국의 화법에서 벗어나 독자적인 산수화의 경지를 개척한 정선의 그림을 재미있게 읽는 방법은 무얼까?

 

바로 음양의 이치를 담은 주역으로 그림을 이해하는 것이다. 정선의 유명한 그림 <금강전도>에 대해 다음과 같은 말이 전해진다.

 

굳세고 뾰족하고 거친 바위산은 양()의 형상이요, 부드럽고 숲이 우거진 토산은 음()을 상징하니 금강산이야말로 음양의 이치를 갖춘 명산이로다. 양이 음에게 다가서고 음이 수줍게 뒤로 물러나니 이 또한 남녀의 이치와 같구나!’

 

음양의 이치를 그림에 담아낸 정선의 해학적인 태도를 엿볼 수 있다. 정선 이후 김홍도나 신윤복 역시 남녀의 관계, 음양의 이치를 그림에 담아내면서 노골적으로 표현했다. 하지만 정선은 산수화에서 모든 남녀 관계를 담아내었으니 그림을 제대로 이해하면 얼마나 재미있는지. 그러한 예를 보여준 그림이 <박연폭포>이다. 웅장하게 떨어져 내리는 폭포의 힘찬 기운, 폭포를 감상하고 있는 세 명의 선비들이 그림에 등장한다. 하지만 이곳에는 재미있는 사실이 숨겨져 있다. 박연 폭포는 그 자체가 남성의 성기를 나타내며 폭포를 감싸고 있는 산은 여성의 그것이다. 음양의 이치를 자연에서 찾아낸 셈이다. 멋진 산수화 정도로만 한국화를 보았는데, 정선의 그림을 보면 볼수록 재미있고 신비롭기만 하다.

 

 

정선이 30대에 그린 금강산 그림(상)57세가 되어 완성한 <금강전도>(하)

 

마지막으로 정선의 위대한 걸작 <금강전도>를 보자. 정선이 30대에 그린 금강산의 그림과 50대 후반에 그린 그림이 확연히 차이가 있다. 30대에 그렸던 금강산은 있는 그대로의 사실을 그려낸 지도와 같은 느낌이 든다. 하지만 57세에 완성한 금강전도는 실제보다 더 실제 같으며, 그림 속에 신비로운 금강산의 일 만 이 천 봉우리가 그대로 살아있는 듯하다. 금강산의 바위는 남성을 상징하고, 흙은 여성을 표현한다. 그래서 굳세고 뾰족한 양기의 바위가 부드러운 토산을 향해서 돌진하는 모습이 보인다. 바로 금강산은 음양의 이치를 갖춘 명산이라 한다. 흙과 돌이라는 음양의 조화와 함께 금강산이라는 세계 전체를 아우르는 태극의 형상은 그야말로 천지 우주의 신비로움을 담고 있다. 정선은 금강전도를 그리고 난 후 베갯머리에서 이 그림을 보는 것이 실제 금강산을 가서 보는 것보다 더욱 낫다고 스스로 평했다.  

수 백 년 전의 그림, 교과서나 미술관의 그림으로만 이해했던 정선의 그림들이 지금 우리들의 삶 속에서도 움직이는 것 같다. 인간의 마음은 예나 지금이나 다르지 않고, 삶의 이치는 하나임을 알게 된다. 단순히 미술사나 그림 보는 기법의 강의가 아니어서 더욱 좋았다. 어렵지 않고, 대중의 눈높이에 맞았다고나 할까. 계속 이어지는 김홍도, 신윤복의 그림들은 또 어떤 재미를 담고 있을지 궁금해진다. 오늘 강의에서 현상이 아닌 본질을 바라보는 것, 형식보다는 마음을 읽는 것이 바로 모든 인문학의 기본이라는 말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또한 그림 역시 우리의 삶과 동떨어진 주제가 아니었음을 깨닫는 시간이었다.

 

_김소라 수원시평생학습관 시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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