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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학기 끝을 붙잡은 명사 특강 - 공부 중독] 공부만이 답이라고 믿는 이들에게

작성자
신연정
작성일
2017.03.03
조회수
5700



문화학자 엄기호, 정신과 전문의 하지현은 반가운 명사다. ‘공부만이 답이라고 믿는 이들에게’란 부재를 단 책 『공부 중독』(위고,2015)은 1쇄가 나오기 무섭게 내가 산 책이다. 당시에 나는 고민이 있었다. 평생학습관이나 도서관 등 좋다는 강연이 열리는 곳이면 어디든지 달려가 듣고 배우려던 때, 강사들 말에 격하게 고개를 끄덕이고, 강의자가 소개하는 책이나 영화 등 온갖 자료들을 챙겨보려 애썼다. 그런데 도저히 내 것이 되지 않는 불편함, 남의 멋진 이야기를 주워 먹고만 다니는 느낌, 헛헛함이 쌓였다. 저자인 엄기호 님은 책을 쓴 계기에 대해 이렇게 밝혔다.


"나는 요즘 공부하는 게 재미없고 가르치는 게 고역이다……. 고등학교 때도 느껴보지 못한 낯선 감정이다……. 공부가 삶의 문제를 해결하는 데 도움이 되기는커녕 외려 삶을 질식시킨다는 생각을 가지게 되면서다. 강의실에 들어서면 나는 한 마리의 ‘똑똑한 원숭이’가 된 느낌이다. 내가 펼치는 ‘화려한 언변’과 ‘풍부한 사례’에 학생들이 감탄한다. 그런데 그 감탄하는 눈동자들 속에서 배움과 성장을 찾기가 힘들다. 짝짝짝, 서커스 보고 박수치고 사라지는 느낌이다. 관객이 떠나고 난 다음 빈 서커스장에서 목에 족쇄를 차고앉아 있는 원숭이가 된 느낌을 떨쳐버릴 수 없다."

『공부 중독』(위고,2015) p5~p6

 

똑똑한 원숭이의 비애

멋진 이야기를 쏟아내는 강의자도 그 나름의 비애를 갖고 있었구나. 이번 명사 특강에서도 ‘똑똑한 원숭이’를 만나게 될까 두려움이 앞섰다. 언제부터인가 누군가의 강의를 들으면 들을수록 머릿속이 넓어지는 것이 아니라, 복잡하게 얽혀만 갔다. 이런 나의 상황에 ‘공부 중독’이라는 이름표를 붙여도 될까? 그리고 모순이지만 내 아이는 공부에 중독되면 좋겠다는 바람, 이 바람에 어떤 문제가 있다는 건지 해답을 찾고 싶었다.


우리를 체계적으로 무능하게 만드는 공부

2월 13일 월요일 저녁 7시, 명사 특강이 열린 수원시평생학습관 대강당에는 여러 연령대의 사람들이 모였다. 평생학습시대란 말에 걸맞게 ‘공부’에 대한 관심은 입시를 앞둔 청소년들만의 얘기가 아니다. 혹시 헛된 공부에 허송세월 하는 건 아닌가 싶은 나 같은 사람, 어떻게 하면 내 아이가 공부에 중독될 수 있는지, 강의 내용과는 전혀 다른 기대를 안고 온 사람, 공부에 중독된 사회가 문제라면 공부를 하지 말라는 얘기냐는 물음을 가진 사람도 있었다. 먼저 강의에 나선 하지현 님은 ‘실수’를 병적으로 싫어하는 젊은이를 많이 만난다고 한다. 18세에 대학 입시에 실패하거나, 대학 1학년 마치고 입대를 하지 않거나, 졸업 무렵 영어 어학 점수가 900점대에 이르지 못한다거나 하면 낙오한다는 강박에 쌓인다. 청춘 시절 대부분을 시기와 점수에 맞추는 삶을 산다. 모두 똑같이 공부하기 때문에 낙오하지 않는 방법은 실수하지 않는 거다. 실수하지 않으려면, 인생을 사는 데 전혀 필요치 않은 공부라 하더라도 끊임없이 반복할 수 밖에 없다. 이러다 보니 공부를 하면 할수록, 삶이 체계적으로 무능해지고 있다고 지적한다. 이어진 엄기호 님의 이야기는 좀 더 구체적이다. 최근 국정농단 사태에서 드러난 소위 지식인과 전문가란 사람들의 민낯에 실망한 사람들이 얼마나 많냐는 얘기다. 정권의 노예로 전락한 부역자들의 면모를 보면서, 지식인으로서 자부심이 사라진 공부가 무슨 소용이냐는 비판이다. 재난에 대한 감수성이 사라진 것도 잘못된 공부 때문이 아닌가 싶다 한다. 조류인플루엔자와 구제역이 휩쓸고 있는 요즘이지만 오로지 정치 뉴스에만 관심을 쏟고 있는 사람들을 보며, 공부한 사람들의 편협한 세상 보기에 걱정이 많다 한다. 자연과 인간이 어우러져 사는 이 세상에 대해, 진정 이해하는 공부를 했더라면 닭과 소가 숱하게 도살처분 되는 요즘 상황을 보면서도 지독히 무심할 수 있을까 하는 얘기다. 마지막 문제 제기는 하지현 님의 얘기와 통한다. 공부하면 할수록 다룰 줄 아는 것이 생겨야 하는 데 뭐 하나 재대로 다룰 줄 아는 것이 없어진다 한다. 내 몸에 기예를 쌓지 못하는 공부는 소용없다, 체계적으로 무능해지는 공부는 더는 필요 없다 한다.

 

"삶이 성장의 과정이라면 공부는 성장하는 삶을 위한 도구여야 합니다. 지금과 같은 공부는 삶을 식민화하는 도구일 뿐이에요. 이런 공부를 그만두자는 것입니다. 대신 공부의 자리를 원래대로 돌려놓아야 해요. 당대의 문제를 파악하고 헤쳐나가는 삶의 지혜, 기술을 익히는 과정으로서의 공부 말이에요. 청소년들만 문제가 있는 게 아니라 우리 어른들도 잘 모르고 있어요. 무능력하기는 어른들도 매한가지입니다. 공부라는 맥락에서 보면 어른과 청소년 모두가 처한 ‘동시대성 ’이겠죠."

『공부 중독』(위고,2015) p189

 

공부 중독, 그 고리를 끊는 법

삶을 위한 도구로, 쓰임이 있는 공부는 어떻게 해야 할까? 지금의 잘못된 공부 중독에서 벗어 날 방법은 무엇일까? 학교, 사회, 부모가 ‘공부중독’ 사회가 낳고 있는 문제점을 깊이 인식하고 바뀌어야 한다고 말한다. 지식을 기반으로 한 공부와 몸으로 익혀야 하는 공부, 학교는 이 두 가지 공부에 균형을 맞춰야 한다. 영어, 수학 1등급 맞추기에 급급하지 말고 사람에 대한 존중과 우정, 놀이, 요리, 그림, 음악, 운동 등의 즐거움을 아는 사람을 기르는 학교로 변신이 필요하다. 사회는 최소한의 삶을 유지할 수 있는 경제적 뒷받침을 마련해야 한다. 공부로 계층 이동을 못 한다 하더라도, 세상에 대한 경이로움을 잊지 않을 수 있는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는 얘기다. 부모는 욕망과 불안을 접어두라 한다. 현재의 공부 시스템 속에서 뭔가 얻을 수 있는 사람은 아랍 왕자와 같은 부자들뿐이니 자녀에 대한 과잉투자를 그만두라 한다.

 

무장해제, '적'은 누구인가?

초등학생 두 아들이 자라면서 사교육비도 늘어만 간다. 예체능 교육에 돈 들이는 거라며 이 정도는 괜찮다 위안하지만, 언제까지 이 비용을 감당할 수 있을지 솔직히 알 수 없다. 좋은 대학을 나오지 않아도 자신의 재능에 맞는 일을 할 수 있는 사회, 어쩌면 우리가 모두 바라는 사회일지 모른다. 엄기호, 하지현 님은 부모들, 특히 중산층 부모들이 교육에 있어서 무장해제를 해야 한다 말한다. 서로에게 겨눈 무한 경쟁의 총을 거두는 순간, 삶에 쓰임이 있는 진정한 공부를 할 수 있는 세계가 열릴 수 있기 때문이다. 나의 공부도 마찬가지 아닐까? 남의 이야기로 중구난방 채우는 공부가 아니라 나의 한계를 알아내는 공부, 그것이 결국 삶에 쓰임 있는 공부 아닐까 하는 생각에 이르렀다. ‘무장해제’의 순간은 어떻게 찾아올 까? 최근 읽은 그림책에서 비슷한 대답을 찾아봤다.


다비드 칼리의『적』(문학동네,2008)에서는 두 개의 참호에서 두 명의 병사가 적으로 대치하며 총을 겨누고 있다. 두 병사가 기습공격에 나선 어느 날 밤, 적의 참호 안에서 적의 가족사진과 전투 지침서를 발견한다. 적도 자신처럼 가족이 있으며, 한 인간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그렇게 ‘무장해제’ 하고, 평화가 찾아온다. ‘공부 중독’에 빠진 세상에서 서로 경쟁하며 적이 돼야 했던 우리는, 알고 보면 적보다는 한 편이 되는 편이 합리적이다. 계층의 피라미드 맨 꼭대기에 설 수 있는, 고작 몇 퍼센트의 성공을 도드라지게 하려고 그 아래쪽을 위태하게 버티고 있는 평범한 사람들의 불행한 공부는 중단돼야 한다. 왜냐하면 우리는 더는 ‘적’도 ‘들러리’도 아니기 때문이다. 기나긴 노후에 뾰족한 대책이 없고 새해 들어 줄줄이 오르는 아이들 학원비에 황망한 소시민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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