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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효과학과 세계사를 넘나들다_소소하게 시작하는 수제맥주 만들기

작성자
유승연
작성일
2016.12.17
조회수
6622



박왕근 브루마스터의 소소하게 시작하는 수제맥주 만들기

“사실 저는 술을 그다지 많이 마시지는 않아요.”
“그런데 여기는 왜 오셨어요?”
“그게 그러니까요, 많이 먹지도 않는데 한 잔을 마시더라도 좋은 거, 맛있는 거를 마시고 싶은 거예요.”
여기저기서 공감의 추임새가 이어진다.

사먹을 수 있는 것을 굳이 비용과 시간을 들여서 만드는 데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을 것이다. 첨가물 없는 먹거리의 안전함, 수제 먹거리가 주는 깊이 있는 맛과 향의 만족, (맥주는 아니지만 전통주를 생각하면) 전통문화의 보존…. 그러나 막상 수제 맥주를 만들어서 맛을 보니 다른 어떤 말도 필요 없었다.

박왕근 브루마스터의 내공에 빠져들다

수원시평생학습관의 첫 번째 <수제맥주 만들기> 강좌는 총 2회에 걸쳐 진행되었다. 김장하는 엄마 도와드릴 나이로 보이는 앳된 외모와 달리, 경력 10년이 넘는 베테랑 강사 박왕근 브루마스터(주류제조장인)는 수강생들의 어떠한 질문에도 발효과학과 세계사를 넘나드는 백과사전적 지식으로 막힘없이 답변해주었다. 오산 오색시장에서 직접 수제맥주 공방을 운영하고 있으며 다양한 프로젝트에서 수제맥주 전도사로 활약 중이다.
첫째 날은 이론 강의와 함께 수제맥주를 만들고 강사의 브루어리에서 판매 중인 수제맥주를 시음했다. 둘째 날은 지난주에 만든 맥주를 병입하고 시판 중인 세계 맥주를 스타일별로 시음하며 수제맥주의 세계에 흠뻑 빠져보았다. 이렇게 만든 맥주는 2~3개월의 숙성을 거치면 훨씬 맛있게 즐길 수 있다. 이 사실을 알고 친하게 지내자는 사람이 주변에 부쩍 많아졌다. 한 번도 그런 적이 없는 남편은 눈이 오니까 걱정된다면서(내가 아니라 맥주가) 차로 데려다 주고 “(혼자 다 먹어 치우지 말고) 꼭 싸오라”는 당부를 잊지 않았다.
얼굴도 예쁘고 공부도 잘 하는 여학생처럼 강의는 전체적으로 이론과 실기의 비율이 적절하게 구성되었으며 이론의 내용과 실기가 유기적으로 구성되어 맥주와 맥주 만들기, 그리고 즐기기에 대한 전반적이면서도 때로 디테일한 지식을 전해주었다. 오랫동안 다양한 곳에서 강의한 강사의 내공이 느껴졌고 직접 공방을 운영하고 다양한 프로젝트에서 일한 경험에서 우러난, 내일 바로 써먹어도 될 것 같은 지식도 많이 있었다.
이론 강의는 맥주 만들기 재료, 도구, 방법을 비롯하여 발효과정, 주의사항, 간단한 맥주의 역사, 세계의 맥주, 스타일별 맥주의 특성으로 구성되었다. 먼저 수제맥주를 만드는 3가지 방법이 소개되었는데, 화기 사용이 제한적인 장소의 한계상 복합적인 방법은 뒷날을 기약하고 가장 간단한 방법으로 직접 맥주를 만들었다.

수제맥주의 확산과 국산 홉 재배의 부활

맥주를 분류하는 대표적인 방법은 효모의 종류에 따른다고 한다. 세계 시장의 70~80%를 차지하며 국산 맥주의 대부분이 속하는 라거맥주가 있고, 기네스, 호가든 등 대부분의 유럽 맥주가 주로 속하며 상면효모방식으로 제조하고 주로 소규모 양조장에서 많이 만드는 에일맥주가 있다. 수업 중에 만드는 것은 에일맥주 중에서도 미국식 페일에일인 APA로 최종 알코올 도수는 4.8이다.
맥주의 재료는 맥아, 홉, 물, 효모가 전부로 무척 간단하며 효모에 의해 맥아 속의 당분이 알코올과 이산화탄소로 발효된다. 천연 방부효과도 있는 홉은 맥주의 쌉싸름한 맛을 책임진다. 이 과정에서 어떤 종류의 효모를 사용하는지, 홉은 어떤 것을 썼는지에 따라 맥주의 향과 맛이 달라진다. FTA로 값싸고 질 좋은 수입 홉이 밀려오면서, 그리고 수제맥주의 확산과 더불어 사라졌던 국산 홉 재배농가들이 하나 둘씩 부활하고 있다고 한다. (백 년 안에) 귀농을 준비 중인 나로서는 왠지 사업 아이템을 하나 얻은 기분이 들어 두근두근했다.
대부분의 국산 맥주는 독일 홉인 할러타워(Hallertauer)를 사용한다. (남편이 좋아하는 칭따오도 이 할러타워로 만든다는데 알려주면 또 어디 가서 잘난 척 하고 싶어 입이 근질근질 하겠지…?) 홉의 종류에 따라 맥주는 다른 맛을 내는데 망고 등의 열대과일맛, 레몬 같은 시트러스, 허브의 맛, 송진 같은 맛, 나무나 흙 등의 맛 정도로 다양하다. 효모의 작용으로 에스테르나 페놀이 생성되어 바나나 등의 과일맛, 정향 같은 향신료의 맛이 난다.

오로라 같은 여러 빛깔과 맛

자몽즙을 짜서 넣은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풍부한 과일 향과 깔끔한 끝 맛의 여운이 오래 가는 박왕근 브루마스터표 ‘오로라’는 이름처럼 여러 색깔을 차례차례 보여주는 신비한 여인 같은 매력을 지닌 에일맥주이다. 눈을 감고 먹었으면 초콜렛으로 착각했을지 모르는 스타우트 맥주 ‘까마귀’의 초콜렛향은 지금도 눈을 감으면 내 혀끝을 맴돈다. 강사가 준비한 귤과 초콜렛 과자와 함께 먹으니 더욱 증폭된 향과 맛이 쓰나미처럼 밀려와서 마리아쥬는 와인에만 있는 게 아니라는 강사의 말에 고개가 끄덕여졌다. (강의실에 처음 들어섰을 때 준비된 귤을 보고 맥주 재료로 착각한 것이 얼마나 부끄러웠는지…)
발효술인 맥주의 당원이 되는 맥아는 맥주의 색, 맛, 질감을 담당한다. 0~40사이의 SRM(Standard Research Method)으로 표시되는 맥주의 색상은 스타우트가 38이나 40 정도이다. 술에서 가장 중요한 도수는 ABV(Alcohol by Volume)로 나타내는데 라거맥주가 4~5%, 에일이 5~8%이다. 맥아를 많이 넣을수록 ABV는 높아지며 가격도 동반 상승한다. 수제맥주점을 창업하려는 수강생들의 귀를 쫑긋하게 만드는 귀중한 팁이다.
최순실 맥주로 유명한 ‘올드 라스푸틴’은 무려 12도의 ABV를 가지며 한 병에 몇 백 만원을 호가한다고 하니 돈과 시간이 덤비는 사람이라면 한번 맛보는 것도 좋을 듯하다. 브루마스터들의 자존심을 건 알코올 도수 대결로 50도 맥주도 나와 있다고 하는데 한 병에 이천만 원짜리 맥주는 어떤 맛일지 궁금하다.
맥주의 정체성이라고도 할 수 있는 쓴 맛은 IBU(International Bitterness Unit)로 표시되며 보통 라거는 10~20, 에일은 10~60 사이이다. 쓴맛이 강할수록 홉이 많이 들어간 것이고 대체로 비싼 편이다. 잘 만든 수제 맥주의 쓴 맛은 깔끔하고 개운한 뒷맛으로 남는다. 첫 맛의 과일향, 허브향과 함께 어우러져 마치 첫사랑의 아련함과 그리움, 그리고 살짝 스치는 후회처럼(강의에서 그렇게 시음을 하고도 곧장 송년회로 직행해서 이 세상에는 이렇게 다양한 술이 존재한다는 것을 몸소 체험하였으니…) 그 맥주의 기억으로 자리한다.
 
이 후기를 쓰는 지금 (술을 깨기 위해서는 아니지만) 원두커피를 내리면서 물만 끓이면 바로 먹을 수 있는 인스턴트 커피 대신에 원두를 볶고 갈고 물을 뜨겁게 해서 붓고 추출을 기다리는 수고를 기꺼이 하는 이유를 생각해 본다. 모든 것이 빨라지고 복잡해진 4차 산업혁명과 자율주행차, 3D프린터, 드론이 다가오는 이 세상에서 혼란하고 불안한 사람들은 어디로 가야 하는지 몰라 헤매고 있다. 정작 우리는 가장 중요한 무언가를 잊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늘의 때를 기다려 느리게 살면서도 자연 속에서 분수를 지키며 소중한 가치를 추구했던 사람들의 마음가짐이 지금 이 시대에 오히려 소중하다. 그것이 재료를 고르고 비율을 고민하고 발효환경을 세심하게 만들어주고 기다리는 과정을 거쳐 맥주를 만들고 그렇게 만들어 색을 감상하고 향을 음미하고 맛에 감탄하며 사람들과 시간을 나누는 수제맥주를 돈과 시간이라는 효율로만 따질 수 없는 이유이다.
흐뭇한 마음으로 가져온 맥주를 들여다본다. 아 참, 두세 달 냉장 숙성하기 전에 일주일간은 상온에 두고 하루에 한두 번 흔들어주라고 했는데….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흔들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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