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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콘서트] 소비와 존재사이, 멋진 신세계에서 살아남는 법

작성자
진미정
작성일
2016.12.17
조회수
5486



▲ 함께해서 행복한 북콘서트 기획단과 이안소영님 ⓒ수원시평생학습관

[북콘서트-지금 여기, 사람답게] 네 번째 시간, 이안소영님의 강연을 듣고
소비와 존재사이, 멋진 신세계에서 살아남는 법
 
나는 소비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

"나는 생각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 데카르트의 이 명제는 이제 "나는 소비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로 바뀌어야 할지도 모른다. 당신이 사는 곳이 당신을 말해주는 세상에 살고 있기 때문이다. 소비가 미덕인 세상이다. 내가 살고 있는 집, 내가 타는 차, 내가 메는 가방, 내가 입고 있는 옷들이 나를 대변한다. 존재하기 위해 우리는 더 많은 소비를 하고, 소비를 감당하기 위해 우리는 더 많은 일에 매몰된다. 그리고 그 쓰임을 다하면, 우리가 쓰다 버린 쓰레기들처럼 그렇게 가차 없이 버려질 것이다. 북콘서트 <지금 여기, 사람 답게> 그 네 번째 시간, 「덜 소비하고 더 존재하라」는 책으로 진행된 이번 강연은 이런 충격적인 영상으로 시작했다.
 
 

에코 페미니즘 – 돈 보다 생명

여성환경연대에서 활동하고 있는 이안소영님은 20년 전 자신을 회고하며, 그 당시 여성으로서 자신은 억압받지 않았으며 따라서 여성문제는 자신과는 상관없는 이야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퇴근을 앞두고 내려진 갑작스런 야근 지시에 아무도 반박하지 못하는 여성 동료들을 보며 순종적, 복종적인 것으로 길러진 여성성 탓에 그들이 부당함에 맞서지 못했다는 생각에 이르렀다. 노동 문제에 관심이 많았던 그녀는 이것을 계기로 여성성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고 그것을 해결해야 노동 문제도 해결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 여성학을 공부하게 되었다고 한다.
 

 
임금노동 중심사회에서 여성의 노동은 공기나 물처럼 공짜로 여겨진다. 에코 페미니즘은 이렇듯 임금과 관계되지 않는 여성들의 공동체 기여 노동이나, 돌봄 노동, 살림 노동 등에 관심을 갖는다. 인도 여성들이 산을 개발하려는 남성들에 맞서 나무를 껴안아 생명을 지켜냈듯이(칩코 운동) 그들은 무질서한 개발로부터 환경을 지켜내기 위해 노력하며, 돈보다 소중한 생명에 초점을 맞추고 사회를 바라본다. 따라서 그들은 생계를 유지하는데 필요한 만큼만 만들어 내고 유지할 것을 주장한다. 소비를 부추기는 사회에서 소비에 매몰되지 않기 위해 우리에게 진짜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생각하게 한다.
 
덜 소비하고 더 존재하라

‘나는 나다. 그런데 이런 모습의 내가 아니었으면 좋았을걸’ 하는 열등의식은 모질게도 그를 괴롭혔다. 
-올드스 헉슬리, 「멋진 신세계」, 문예출판사 82p



올드스 헉슬리의 「멋진 신세계」 속 버나드는 다른 알파 계급들보다 더 높은 지적 능력을 지녔음에도 하층계급과 비슷한 외모 때문에 늘 이런 열등의식에 시달린다. 그는 외모 때문이라지만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은 외모뿐만 아니라 보이는 그 무엇, 누군가에게 보여주고 싶은 그 무엇 때문에 늘 이런 열등의식에 시달린다. 우리를 소비하게 하는 것은 아마도 이런 열등의식 때문일 것이다. 그것도 누군가 우리가 모르는 사이 주입한 그러한 의식들로 인해.
 
이런 열등의식 속에서 버나드는 스스로를 그들로부터 단절시키고 나 자신을 찾으려고 애쓴다. 그래서 그것은 동일한 유전자를 가지고, 동일한 교육을 받고 자라 그래서 동일한 사고를 하고 동일한 행동들을 하는 여느 알파 계급들로 부터 그를 차별화 한다. 하지만 이러한 차별화도 잠시, 우연히 맛보게 된 우월의식 속에서 그 역시 그들처럼 여러 개의 기성제품 들 중 하나가 되어 간다.
 
헉슬리가 꾸며낸 세상에서는 태아 때부터 행해진 수차례의 의식교육이 그들의 무의식 속에 자리 잡아 그것으로부터 벗어날 수 없게 만든다. 만인은 만인의 소유물이며, 소비는 미덕이다. 각 계급은 그 사회 질서를 유지할 만큼의 지능만 허락된다. 똑같은 얼굴을 하고, 똑같은 색의 옷을 입고, 자신의 역할에 맡게 단련되어진다. 그 이상은 허락되지 않는다.
인간이라는 존재는 생산자이자 소비자이며, 적당히 성적 유희를 쫓으며 소마라는 약제를 먹으며 불안을 망각하고 행복하다 믿으며 거기에 만족하는 삶을 영위한다. 어디에도 자신은 없으며, 인간이란 사회라는 커다란 기계를 안전하게 굴리기 위한 한낱 소모품에 불과하다. 그럼에도 거기에 절대 의심을 품지 않는다. 이러한 의식을 주입받지 못한 존 만이 야만인이라 불리며 유일하게 소모품으로 전락하지 않기 위해 애쓴다. 하지만 혼자만의 외로운 몸부림으로 끝이 난다.
 
인간이 사회의 한낱 소모품이 되지 않기 위해서 우리는 사회가 만들어 낸 환상 속에 스스로를 노예로 전락시켜서는 안 된다. 우리에게는 여유롭게 살 권리가 있다. 우리는 왜 이렇게 오래 열심히 일하는가? 스스로 되물어 봐야 할 것이다. 행복해 보이는 그 이면에 보이지 않는 불안과 걱정거리들을 우리는 모르지 않는다. 하지만, 버나드나 존처럼 혼자서는 극복해 낼 수 없다. 우리가 함께 해야 하는 이유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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