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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출판, 꿈이 아닙니다-두 번째 이야기] 잠시 쉼표를 찍고 가자

작성자
이명선
작성일
2016.12.17
조회수
6004



▲자신의 책을 들고 기념사진, 손 맛 담긴 나만의 책이다.

[손 맛 담긴 나만의 작은 책 만들기] 후기
깊어진 가을, 잠시 쉼표 찍고 가도 되겠지요

나만의 책 만들기 두 번째 시간, 목차 구성하기

책상 위에 이름표가 놓여있다. 이름표를 목에 걸고 다른 이들이 오기를 기다리는 시간, 오늘의 이야기는 어떤 것이 펼쳐질 지 궁금하다. 오늘은 목차를 구성하면서 나만의 콘텐츠를 만들어야 하는데 아직 머릿속이 정리가 되지 않는다. 뭘 담아야 나만의 이야기가 담기는 것인지, 이번에도 역시 나를 찾는 작업이 쉽지가 않다.
 
“목차는 내 책을 어떻게 분류할 것인지를 예상할 수 있는 전개도입니다. 목차에도 호흡이 있다고 생각해요. 파도타기처럼 구성할 수 있으면 제일 좋겠지요. 주제를 선정해서 어떤 책을 만들어야 할지 고민하면서 목차에 대한 구상을 해 보세요.”
 
선생님의 설명을 들어도 아리송하다. 고민만 하고 있는 내게 선생님은 묻는다. ‘어떤 방향을 정했는지, 주제가 정해졌냐고?’ 방향? 주제? 그걸 여직 못 찾았다. 일단 내용은 ‘작은 나만의 책 만드는 과정’이나 ‘소주제별로 묶어 놓은 글’을 모아볼까 생각 중이라 하니 두 번째가 낫겠다는 조언이다. 주제를 선정해야 나머지가 수월하니 그 부분을 먼저 고민하라 한다. 나만의 이야기를 담는 게 생각만큼 수월하지 않다. 고민에 고민을 하지만 오리무중, 답이 안 나온다. 다른 사람의 의견을 들어보면 방향이 잡힐까? 일단 탈출하고 보자.
 
 
▲세월의 두께만큼이나 오랜 흔적들, 빛 바랜 종이들의 대화가 들리는 듯하다.
 
‘독일에서 2달의 휴가를 얻어 왔다. 가족들과 함께 한 시간을 넣은 사진집을 만들고 싶다. 사진에 느낌을 담아내고 싶다.’ ‘쌓여있는 사진들이 많아 정리하고 싶다. 가족 별로 따로 사진을 정리하거나 남편과 함께 한 추억을 정리하거나, 둘 중 하나를 선택하고 싶다.’ ‘딸의 일기를 추려서 사춘기가 시작된 딸과 관계개선의 선물로 주고 싶다.’ ‘추억이 담긴 기록과 손때 묻은 시간들을 펼쳐내고 싶다.’ ‘자식들과 주고받은 글이 꽤 많더라, 시대별로 모아 결혼한 아이들에게 엄마의 사랑을 보여주고 싶다.’
 
각자의 주제에 맞는 구상을 들어보니 지난번과 내용이 달라진 사람들이 꽤 된다. 나만 고민하는 게 아니란 안도감이 든다. 일주일의 시간동안 생각이 달라지고, 책 안에 담고 싶은 콘텐츠들이 그새 바뀐 것이다. 변화들 속에서도 한 가지 공통점은 책 만들기에 관심 있는 이들은 오래된 기록을 모아놓았다는 점이다. 기차표 한 장, 처음 데이트한 날의 커피숍 영수증, 몇 십 년이 훌쩍 지난 어버이 날 편지, 타자기로 타이핑한 도트 표시 등 자신의 마음과 상대의 마음이 담긴 흔적을 고스란히 모아두고 있다는 사실이다. 서로 같은 시간, 공간을 공유하진 않았지만 시간의 톱니바퀴를 거꾸로 돌리는 느림의 시간을 소중히 간직하고 있다는 점도 닮았다.
 
“책은 글로만 승부하기, 사진과 설명 혼합하기, 사진만 넣기, 시만 넣기 등 다양합니다. 또 종이를 특별한 거로 선택해서 형태적인 부분에 중점을 두기도 하고, 폰트를 활용해 색다른 맛을 내기도 해요. 종이와 폰트를 다양하게 이용하여 출력을 해보세요. 여러 번 시도해 눈으로 봐야 그림이 그려집니다. 종이의 세계도 무궁무진합니다. 무게에 따라, 색깔에 따라, 재질에 따라 다 다른 맛이 나는 게 종이입니다. 무광이냐 유광이냐에 따라 또 다른 맛이 나니 자신이 여러 번 인쇄를 하며 느끼는 게 좋습니다.”
 

▲책은 겉표지와 내지로 구분된다는 설명을 해주는 오와이의 이연우 선생님.
 
이제 좀 더 책의 구성과 가까워지는 ‘쪽 배열표’를 배우는 시간이다. 형식에 대한 고민이 이어진다. 매일 보던 종이 말고 다른 종이가 그렇게 많았나 할 정도로 갖가지 종이가 등장한다. 선생님은 어떤 종이를 쓰느냐에 따라 책의 느낌이 확 달라진다며, 각각의 종이 특징과 느낌을 손으로 느끼게끔 했다. 모조지, 미상지, 스노우지, 펄지, 갱지, 캔트지, 미농지, 종이 숫자가 많아지니 또다시 머리가 또 아파온다. 어느 것 하나 쉬운 일이 없다.
 
내지와 속지를 구성하고 인쇄하는 방법을 배울 때는 머리를 흔들었다. 꼭지를 구성하는데 인쇄 시 쪽수를 어떻게 해야 하는지, 몇 번이나 질문들이 오간다. 타이포그래피, 인디자인, 레이아웃, 이젠 영어울렁증까지 등장이다. 일단 책의 목차에 따라 내용을 어떻게 채울 것인지를 확인하며 마무리로 과제가 주어졌다. 책 내용에 들어갈 첫 장, 꼭지1을 인쇄해 오는 것이다.
 
나만의 책 만들기 세 번째 시간, 콘텐츠 채우기

깊고 울창한 초록빛이 조금씩 변해간다. 자신의 자리를 알고 떠나는 여름빛과 그 자리를 차지하는 가을빛, 우리도 그러하다. 메마른 소리가 가슴에서 울릴 때, 투명한 느낌의 트레이싱지(투명종이)처럼 쉬는 느낌, 편안한 여유가 필요하다. 나만의 책 만들기 5회 수업 중 3회, 이제 조금 그림이 그려지긴 했다. 본격적으로 알맹이를 채워 나가야 한다.
 
“내지를 채우는 시간입니다. 그리드는 눈금선을 가상으로 만들어 놓고 안내선 역할을 합니다. 레이아웃은 글자의 위치를 구성해주고, 폰트는 전체적인 그림이라고 생각하면 됩니다. 활자크기는 누가 읽은 것인지 생각해서 정하는 것이 좋아요. 텍스트 양이 많다면 읽기 편하게 조절하고, 소제목일 경우 아래로 내리는 것도 하나의 방법입니다. 표지를 구분하지 않고도 구성할 수 있으며, 사진만 들어가는 페이지가 있을 수 있습니다. 부각하고 싶은 것은 크게, 중요하지 않은 것은 작게 하면 좋겠지요. 각자 개성대로 구성을 하면 되지만, 들어가는 정보들은 어느 정도 통일하는 게 좋겠지요. 오늘까지는 내지에 들아갈 내용과 구성을 만들어 놓아야 합니다.”
 
단짝 친구들의 얼굴을 캐리커처하고 친구의 이름에 맞는 3행시를 만들어 함께 나누겠다고 한 대학생의 이야기를 들으며 연식이 좀 된 사람들은 청춘을 떠올리고, 자연의 그림과 어우러지는 짧은 글을 보며 바쁜 우리들이 아닌 여유롭던 우리들의 모습을 찾기도 했다. 책이란 유형의 것보다 안에 담겨있는 무형의 시간과 생각들, 우리가 잊었던 것은 그게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한 줄의 이력으로 만들고 싶은 책이 아니라, 나를 들여다볼 도구의 수단으로 작은 책을 선택한 것이라고.
 
책 안에 담기는 콘텐츠는 순전히 자신의 힘으로 찾고 담을 수밖에 없다. 같은 시간이 주어졌지만 그 시간을 사용하는 것은 각자의 몫처럼 내용물이 점점 자신의 색깔로 변하고, 나만의 생각으로 채워지는 게 보인다.
 

▲각자의 콘텐츠를 채우느라 바쁘다. 이제 책의 내용이 담아지는 시간.
 
나만의 책 만들기 네 번째 시간, 표지와 제목 그리고 편집과 검수까지

솜사탕이 좋았다. 설탕 범벅으로 인위적인 단맛이 나는 솜사탕이 왜 좋았을까? 아마도 보송한 느낌과 혀에 닿는 일차적인 단맛의 단순함이 아니었나 생각한다. 고운 실이 입안에 달라붙을 때의 달콤함, 온전히 혼자 다 먹을 수 없는 아쉬움, 혼자만 맛보고 혼자만 행복한 마음을 느끼고픈 마음이 솜사탕에 대한 열망을 더 크게 불러왔는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좋았던 솜사탕이 시들해질 때는 혼자 실컷 먹을 수 있거나, 단맛이 싫어졌을 때이다.
 
이제 책에 대한 밑그림이 그려지고 나니 나만의 책에 대한 신비감이 조금 줄어든 것도 사실이다. 손 맛 나는 책을 만든다는 취지가 무색하게 처음, 나만의 책을 접했을 땐 환상을 갖고 달려들었다. 두께 있는 책을 구상하며 작은 손바닥크기의 책이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최소 떡 제본은 해야 책답다는 생각도 했다. 열두 번도 더 마음이 열탕과 냉탕을 오가며 책에 들어갈 내용을 넣고 빼며 들고 먹기 싫어 두리번거리는 아이가 되었다.
 
“표지는 책의 얼굴이니 자신의 개성이 있어야 합니다. 표지 구성요소에 따라도 되고, 아무것도 없이 무제여도 괜찮아요. 책이 담고 있는 내용이나 제목을 강조할 수도 있고, 대표적인 이미지를 사용해도 됩니다. 제목도 문장의 형태, 책 형식을 이용하기도 책을 직접, 간접적으로 드러내는 것도 어느 것이든 상관없어요. 책 정보를 넣어도 넣지 않아도, 다 본인 마음입니다. 독립출판이 이래서 좋은 거지요.”
 
검수 및 수정을 할 때, 다른 사람에게 확인을 부탁하는 것도 방법이다. 내 눈엔 보이지 않는 실수가 다른 이에겐 선명하게 보이기 때문이다. 한 가지 꼭 지켜야 할 것은 출처 표시이다. 개인 소장용이 아닌 책을 정식으로 발행하거나 판매할 생각이 있다면 더 주의해야 한다. 저작권은 서로 지켜야 하는 예의이다.
 

▲가제본을 한 결과물을 놓고 최종 점검을 하고, 마무리를 하는 시간, 여전히 책상 위는 정신없다.
 
책은 글쓴이가 세상을 보는 관점을 드러내는 것이므로 나의 의도가 잘 반영 되어 있는지 생각해야 한다. 이제 책에 실릴 전체적인 틀은 다 잡혔다. 소소하게 나머지 부분들을 채우고, 수정해가면 완성된 책을 만나게 된다. 마지막 날은 각자 인쇄해온 내용물을 학습관이 아닌 선생님의 작업실에서 마무리하기로 했다. 최종 결과물에 대한 설렘으로 일주일을 기다리면 된다. 참, 한 분의 말씀이 가슴에 담았다. ‘미루어 두었던 작업들을 이번 수업을 통해 하게 되었다. 계속 이 작업을 이어서 하겠다.’
 
 
나만의 책 만들기 다섯 번째 시간, 바인딩작업

마지막 수업은 선생님 작업실 공간인 경기청년 문학 창작소에서 진행되었다. 이곳은 경기상상캠퍼스(구 서울대 농생대)라고 부르는데 청년들의 창작실험과 창작활동을 지원하는 문화공간이다. 딱딱한 교실이 아닌 수업, 어디든 떠나고 싶은 마음과 맞아떨어진 시월의 끝자락, 그것만으로도 과분하다.
 
“인쇄된 속지와 표지를 합쳐 하나로 묶어주면 책이 완성됩니다. 책을 엮는 여러 방법 중 중철 제본과 동양식 제본을 해볼 겁니다. 중철제본은 페이지 수가 많지 않을 때 사용합니다. 한 장의 종이를 반으로 접어 그 중간에 철심을 박습니다. 좌우를 펼쳐보면 중간에 철심이 박혀 있어요. 페이지가 많아지면 가운데 부분이 튀어나오는 부분을 자르면 됩니다. 동양식 제본은 고서에서 많이 볼 수 있습니다. 송곳으로 구멍을 뚫어서 바늘로 꿰매는 방식입니다. 전통적인 맛이 느껴지기는 하는데 중첩과 달리 중간 부분이 확 펴지지 않습니다.”

 
▲마지막 작업인 제본, 이제 한 권의 책이 완성 된다.

손에 잡힌 가을이 제법 깊어졌다. 발돋움하던 초록의 기운이 아직 손끝에 있는 듯하더니 나뭇잎색의 변화가 보인다. 순환되는 계절의 변화를 막을 수 없는 것처럼 각자 마음에 간직했던 꿈을 막을 수는 없다. 책의 모양도 다르고, 내용도 다르고, 구성도 다르다. 그럼에도 한 자리에서 웃을 수 있는 이유는 저마다 원하던 일을 행하고 얻은 행복이 귀함을 알기 때문이다. 몇 번의 시행착오를 거치고, 수정을 하며 처음과 다를지라도 그 과정을 함께 했기 때문에 이해의 깊이가 생겼을 게다.
 
각자 준비해 온 간식을 펼쳐 우리들만의 방식으로 헤어짐의 인사를 나누었다. 한 달이 조금 넘는 시간, 길지 않은 시간임에도 정이 흠뻑 들었다. 자신만의 색깔이 묻어나는 책을 만들기 위해 인생을 열어 나의 삶을 보여주고 들어주었기에 오래 본 사람처럼 서로 정이 들었다. 이틀 후 독일로 떠난다는 대학생, 30년 결혼 생활을 결산하신 어르신, 그림과 글을 엮어 시리즈로 계속 책을 만들겠다는 분, 사랑하는 아내와의 흔적을 오글거린다며 절대 펴보지 못하게 하신 분, 오로지 아이만을 위해 책을 만들었던 분, 지난 시간을 반대로 돌려 다시 그때를 기억하고 싶다고 하신 분, 남자친구의 부모님께 함께 한 시간을 보여드리고 싶다고 사진집을 엮으신 분, 나는 친구의 시와 나의 글을 엮었는데 모두 기억에 남는다.
 
손 맛 나는 나만의 책이 주는 매력, 독립출판이 주는 매력, 그 매력을 알아차린 우리들, 그렇게 깊어가는 가을에 함께 케이크를 자르고 붉은 샴페인을 터트리며 인생의 한 페이지에 쉼표를 잠시 찍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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