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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와 소통하는 글쓰기

작성자
이명선
작성일
2016.10.26
조회수
56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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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기자학교 강사인 이남희 작가 ⓒ수원시평생학습관


<시민기자학교: 칼럼 쓰기Ⅱ> 일상의 기록이 칼럼이 되는 순간
생각은 손으로 한다


풍요의 계절이라는데 허하다


먹어도 먹어도 배고프다는 내게 할머니는 "맴이 헛헛해서 그려. 배가 고픈 게 아니라 맴이 고픈겨." 하셨다. 더 어린 날엔 맴이 헛헛하다는 의미를 몰랐다. 밥 먹고 사는 일만 해결되면 나머진 문제되지 않았다. 그 외는 사치라 생각했다. "배가 불러서 그런다"는 어른들의 말이 거슬리면서도 맞는다고 생각했다. 하루하루 생활에 충실했다. 그럼에도 배가 고팠다. 겉 배는 부른데 속배가 채워지지 않았다. 욕구불만인 사춘기 아이처럼 헤맸다. 가을, 참 오묘하다. 날씨는 날씨대로, 빛깔은 빛깔대로, 마음은 마음대로 요랬다조랬다 한다. 사람의 감정을 들었다 놨다하는 가을이라 그런가, 더 허하다.


글을 잘 쓴다? 연필만 잡으면 줄줄 써내려가는 능력을 가진 사람이 부러웠다. 그들에겐 몇 장쯤 쓰는 일은 일도 아닐 꺼라 생각했다. 능력 없이 고민만 하는 자신이 한심해 보였다. 괜한 자책도 했다. 좋아하는 일이 고역이 되는 순간 그건 일이 아니란 말, 좋으면 힘들지 않다는 말, 다 듣기 좋은 소리로 들렸다. 허기진 어느 날, "일상의 기록이 칼럼이 되는 순간" 제목이 그럴싸하다. 제목 값을 하는지 들어볼까? 아니기만 해봐라. 알 수 없는 치기를 부리며 첫 수업을 기다렸다.


글 잘 쓰는 비결? 글은 쓴 만큼 는다


9월의 마지막 금요일, 수원평생학습관의 어느 강의실, 낯선 이가 들어왔다. 짧은 단발머리, 반쯤 풀린 굵은 파마, 청바지 위에 검은 재킷을 걸치고 운동화를 신었다. 성큼성큼 앞자리를 향해 걷는데 심상치 않다. 자기 확신의 뒤태다. 목소리마저 대찬지라 마이크가 필요 없다. "58년 개띠로, 여기서 제일 연식이 오래 됐다. 문단의 주목을 받고 싶으나 세상이 그렇지 않음을 우린 알지 않는가, 지금은 강의로 먹고 산다." 짧지만 강렬한 선생님의 자기소개다. 이어서 바로 과제 안내다. 많은 선생님들을 만났지만 첫인사 후 과제소개를 하는 이는 드물었다. 인사, 과제, 수업이 망설임 없이 이어진다.


"글쓰기의 비결은 소리 내서 읽어 보는 것이다. 말이 안 나와 말을 못한 적이 있는가? 작정을 하지 않아도 말은 술술 나온다. 흐름을 타면 저절로 말이 나오는데 글도 그러하다. 소리 내서 읽으며 눈으로 글을 보고 귀로 들어봐라. 글을 쓸 때는 두세 배 정도 더 구체적이어야 한다. 얼굴을 맞대고 말을 할 때는 대충 말해도 이해가 된다. 글은 다르다. 그 글을 쓴 사람은 알고 있는 사실이나 읽는 사람은 알지 못한다. 읽는 사람을 염두에 두고 자세하고 친절한 글이 되게 써야 한다.


또 하나, 생각은 손으로 한다. 모든 작가는 창작노트가 있다. 언제든 쓸 수 있는 노트를 준비해라. 한 순간에 오만가지 생각을 하나 그 순간이 지나면 다 잊는다. 무조건 적어라. 틈이 날 때마다 뭐든지 써라, 쓰는 재미를 느낄 수 있다. 메모한 걸 구성하고 써라, 쓰다보면 막막함이 사라진다. 물 스미듯 다가와 아~ 하고 감동하는 글, 이성보다 감성이 작동하도록 써라, 정서적 의미가 가미된 일상어를 선택하라. 긍정언어를 사용해라.


"자신을 소개하는 글"을 써서 제출하라는 과제 안내를 마지막으로 첫 수업이 끝났다. 어디가 시작이고, 끝인지도 모르게 휙 지나갔다. 다음 수업, 벌써 마음이 요동을 쳐댄다.


깐깐한 시어머니가 건넨 사이다


"제목은 미니스커트처럼 보일 듯 말 듯 해야 해요. 너무 감추면 시선을 끌지 못하고 너무 드러내면 호기심을 죽입니다. 보일 듯 말 듯한 치마 길이여야 합니다. 표현하려는 내용의 핵심 이미지가 제목이 되면 제일 좋겠지요."


제목은 미니스커트란 비유를 들었을 때만 해도 말문이 트인 아이처럼 아~하! 깨달음이 있었다. 대단한 뭔가를 알았으니 제목 붙이는 것쯤이야 했다. 당찼던 자신감이 다시 제목을 보는 순간 줄어든다. 감탄과 창피함 사이에서 저울질이 또 시작되었다. 사람들이 글을 쓰면 "내가 어떻게 이런 글을 썼지?",  "나는 이렇게밖에 못 쓰나?" 하는 두 가지 감정을 느낀다고 하더니 한 치의 오차도 없이 그렇다. "글은 계단식으로 느니 자신에게 실망하지 말라." 선생님의 연이은 당부에 바짝바짝 마르던 입술과 달아오르던 얼굴이 좀 진정이 되었다.


과제에 대한 선생님의 첨삭시간, 과제로 제출한 글들을 각각 한 부씩 받았다. 먼저, 글을 쓴 주인공이 자신의 글을 소리 내서 읽었다. 읽는 사람은 자신의 글이라 떨린 목소리였지만, 듣는 우리들은 일단 내 글이 아니란 사실만으로 안도했다. 잠시 후 선생님의 첨삭이 시작되는 순간, 침 넘어가는 소리조차 들리지 않는다. 교실은 말 그대로 적막강산이다.



▲강사의 첨삭이 끝난 과제물. 다수의 교정과 약간의 칭찬이 섞여있다. ⓒ이명선


허투로 넘어간 부분 없이 첨삭된 과제물


선생님은 토씨 하나 그냥 넘어가지 않았다. 조사와 시제를 유달리 강조했는데 처음부터 끝까지 한 문단, 한 문장, 한 단어까지 놓치지 않는 세심한 첨삭이다. 깐깐하기가 이루 말할 수 없다. 날카롭게 새색시 잘못을 잡아내는 시어머니가 톡톡 쏘는데 맞는 말이라 어떤 반박도 할 수 없다. 다시 얼굴이 붉어지며 식은땀마저 흘렀다. 한편으론 시원한 사이다를 들이킨 듯 명치끝이 뚫리며 막힌 체증이 트림이 되어 나왔다. 드라마만 폭풍전개가 있는 줄 알았는데 교실안의 풍경도 그러했다. 글 하나에 감탄이, 글 하나에 탄식이, 글 하나에 민망함이, 글 하나에 깨달음이 교차했다.


"글을 잘 쓰느냐, 못 쓰느냐가 아니라, 쓰고 안 쓰고의 차이만 있다. 1년에 한 편이라도 끄적거린 사람은 미련이 없다. 쌓여 있는 창고에 불을 밝혀야 한다. 불빛을 비출 때만 보인다. 무얼 쓰겠다고 작정했으면 한 문장이 될 때까지 쓰고 또 써라. 당나라 시인 백거이(白居易)는 시를 쓴 다음 이웃 노파에게 물어보아 이해 할 때까지 쉽게 고쳐 썼다고 한다. 내 글을 읽는 사람을 생각해 쉽고 자세하게 써라."


앞으로의 과제, 일상어를 살려서 쉬운 글로


6회 수업 중에서 3회가 끝났다. 글쓰기에서 필요한 스토리텔링, 소재와 주제 찾기 등의 수업을 받았다. 두 번의 과제를 제출해 현미경보다 꼼꼼한 첨삭도 받았다. 한 편의 글이 늘어날 때마다 근거 없는 자신감도 생겼다. 물론 몇 번의 수업을 받았다고 금방 글쓰기의 달인이 될 수 없음을 잘 안다. 그럼에도 글쓰기를 해야 한다는 확신이 들었다.


그동안 객관적이지 못한 눈으로 자신의 글을 보니 변명이 길었었다. 제3자의 눈으로 정확하게 문제를 짚어내는 잣대를 마주 하니 답답함이 사라졌다. 문제가 분명 있는데 정확히 어떤 문제인 줄 몰랐던 부분도 미세하게나마 알게 됐다. 여러 가지 얻은 수확 중 가장 큰 것은 우리글에 대한 생각이다.


모국어라고 너무 만만하게 지나쳤던 부분이다. 조사 하나에 전혀 다른 글이 되고, 간과했던 어미의 통일 등 고쳐야 할 부분이 많다. 나는 머릿속에 있는 사실을 쓰니 이해가 되지만, 상대는 전혀 정보가 없어 다르게 해석할 수 있음을 새롭게 느꼈다. 일상어를 살려서 쉬운 글을 쓰는 노력은 두고두고 해야 할 일이다.


반환점을 돌아선 수업이 기다려진다. 절정은 글의 2/3지점에 써야 한다는데 우리들의 수업도 그럴 것이다. 첨삭이란 검열, 통과의례의 시간이 기다리고 있지만 즐거운 비명으로 극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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