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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든 학교) 노벨문학상수상작 읽기 – 크러스너호르커이라슬로(번역가 초청 강연)

작성자
신성민
작성일
2026.02.25
조회수
73/2



이번 강연은 번역서 [서왕모의 강림]의 일부를 함께 낭독하고, 그 텍스트가 열어 보이는 사유의 방향을 따라가는 방식으로 진행되었다. 단순히 내용을 설명하는 자리가 아니라, 한 문장을 천천히 읽고 그 안에 담긴 문체와 의미를 곱씹는 시간에 가까웠다. 강연은 크게 세 개의 부분을 중심으로 이어졌다. ‘가모가와의 사냥꾼’, ‘크리스토모르토’, 그리고 ‘사적인 열정’이다. 서로 다른 예술을 다루고 있었지만, 결국은 ‘관찰’과 ‘예술’, 그리고 그것을 대하는 인간의 태도라는 하나의 흐름으로 자연스럽게 연결되고 있었다.

먼저 낭독된 ‘가모가와의 사냥꾼’에서는 가모가와 강 한가운데 서 있는 백로의 장면이 소개되었다. 겉으로는 정지된 풍경처럼 보이지만, 번역가는 그 ‘움직이지 않음’ 속에 담긴 긴장에 주목했다. 백로는 사냥이라는 단 하나의 순간을 위해 모든 감각을 억제하고, 동시에 모든 것을 걸고 서 있는 존재였다. 강물은 흐르고 사람들은 오가지만, 백로는 오직 하나의 목표에 집중하며 미동도 하지 않는다. 강 주변을 오가는 인간들과 대비되는 이 장면은 특히 인상 깊었다. 사람들은 끊임없이 움직이며 바쁘게 하루를 살아가지만, 정작 생명력이 가장 응축된 순간은 알아차리지 못한 채 지나친다. 번역가가 언급한 ‘부동의 미학’이라는 표현은 이러한 대비를 더욱 선명하게 만들었다. 움직이지 않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 안에는 가장 치열한 집중이 담겨 있다. 이 장면은 단순한 자연 묘사를 넘어, 모두가 달리는 세계 속에서 홀로 멈춰 서는 예술가의 태도를 떠올리게 했다. 무엇인가를 이루기 위해서는 한순간에 자신을 거는 결단이 필요하다는 점을 생각하게 만드는 대목이었다.

이어 소개된 ‘크리스토모르토’에서는 한 관람객이 오래전 보았던 작품을 다시 찾는 장면이 낭독되었다. 특히 예수의 얼굴을 오래 응시하는 부분에서 번역가는 그 순간의 분위기를 천천히 짚어 주었다. 고통을 설명하거나 해석하기보다, 그 슬픔이 조용히 전달되는 장면이었다. 낭독을 통해 들려온 예수의 얼굴은 개념적으로 이해해야 할 대상이라기보다, 한동안 눈을 떼기 어려운 존재처럼 느껴졌다. 번역가의 설명을 따라가며, 그 장면은 ‘이해’라기보다 ‘느낌’에 가까운 경험으로 다가왔다. 슬픔을 규정하기보다, 그 앞에 잠시 멈춰 서는 시간이 강조된 대목이었다 작품 속 분홍 셔츠의 인물을 둘러싼 긴장은 현실과 상상을 교차시키며 묘한 분위기를 형성했다. 그 인물이 예수일지도 모른다는 암시는, 예술 작품이 단순히 과거의 유물이 아니라 지금 이 순간에도 우리를 따라다니는 질문이 될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 아무도 원하지 않는 희생, 이해받지 못한 고통이라는 해석은 독자에게도 불편하지만 필요한 질문을 남긴다. 예술은 위로를 제공하기보다는, 쉽게 지나칠 수 없는 장면 앞에 우리를 세워두는 존재라는 생각이 들었다.

마지막으로 다루어진 ‘사적인 열정’에서는 바로크 음악이 중심에 놓였다. 은퇴한 건축가가 바로크 음악을 통해 신을 찬미하고, 형식과 내용의 일치를 강조하는 장면이 낭독되었다. 강연 중 실제 바로크 음악을 함께 감상하는 시간이 있었는데, 음악은 설명보다 먼저 감각으로 다가왔다. 텍스트에서 언급된 ‘천상의 것’을 엿본다는 표현이 단지 비유가 아니라, 실제 감각으로 체험되는 순간이었다. ‘사적인 열정’에서 인상 깊었던 점은 바로크 음악을 절대적인 예술로 바라보는 화자의 태도였다. 작품 속 화자는 모든 예술을 동등하게 보는 관점을 거부하며, 바로크 음악이 지닌 형식적 완결성과 종교적 깊이를 특별한 위치에 놓는다. 그것은 단순한 취향의 문제가 아니라, 하나의 신념에 가까운 확신처럼 보였다. 강연에서는 이 대목을 통해 특정 예술 형식이 한 개인에게 얼마나 강한 의미를 가질 수 있는지를 짚어 주었다. 바로크 음악은 화자에게 단순한 음악 장르가 아니라, 인간을 넘어서는 어떤 절대적인 것을 향한 통로처럼 제시된다. 이러한 지점은 백로의 집중, 예수의 슬픔과 맞닿아 있었다. 여기서도 예술은 인간의 일상을 넘어서는 순간을 가리키고 있었다.

강연 말미에는 번역 과정에 대한 구체적인 질문들이 이어졌다. 한 참석자는 헝가리어 원작을 영어판을 통해 번역한 점에 대해 한계를 묻기도 했다. 이에 대해 번역가는 여러 판본을 비교하기보다는 자신이 마주한 영어 텍스트에 충실하려 했다고 답했다. 번역가는 번역자 역시 하나의 텍스트를 책임지는 입장이라는 점을 강조했다. 또 다른 질문에서는 만연체 문장을 한국어로 옮길 때의 어려움이 언급되었다. 길게 이어지는 문장을 그대로 살리면 어색해지고, 다듬으면 원문의 호흡이 사라지는 딜레마가 있었다는 설명이 인상 깊었다. 번역을 마친 뒤에도 여러 차례 다시 읽으며 의미를 점검해야 했다는 이야기에서 번역의 고단함이 느껴졌다.

이번 강연은 작품을 분석하거나 요약하는 시간이 아니라, 한 문장과 한 장면 앞에 오래 머무는 연습에 가까웠다. 백로를 바라보는 시선, 예수를 응시하는 태도, 바로크 음악에 귀를 기울이는 자세는 모두 ‘멈춰 서는 감각’으로 이어졌다. 빠르게 이해하고 넘어가기보다, 잠시 멈춰 바라보는 태도. 강연이 끝난 뒤에도 그 감각은 쉽게 사라지지 않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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