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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위의 학교-5차 답사 화성 안 문화거리와 역사유적 후기

작성자
김정현
작성일
2013.11.20
조회수
6402/1



북수동 사람들...
 
길 위의 학교 마지막 답사가 있는 날이다.
하늘도 우리들의 마지막 만남을 아쉬워하듯 아침부터 추적추적 비를 쏟아내고 있다.
오후 2시 “대안공간 눈”으로 서둘러 차비를 하고 만남의 장소로 향했다.
비가 오는 날씨 때문인지 다른 차시보다 오는 인원이 적어보였다. 몇몇 처음 보는 얼굴들이 눈에 띈다.
서울에서 왔다는 연인 한 쌍도, 예쁜 비둘기마냥 속닥거리는 게 옛 추억을 떠올리게 하는 것 같아 정겹다.
 
오늘 안내는 수원문화재단에서 홍보, 기획을 담당하시는 이형복 대리께서 맡아주시기로 하셨다. 오늘의 일정은 “대안공간 눈”을 시작으로 하여 북수동 벽화마을-팔 부자거리-수원화성박물관-수원사-보리쌀집-영동 아트포라 순으로 답사가 예정되어있다.
 
먼저, “대안공간 눈”의 대표이신 조각가 이윤숙씨의 간단한 소개와 영상이 상영되었다. 이곳은 40여 년 간 부모님이 거주하시던 주택을 물려받아 개조하여, 주민들과 소통의 장소로 이용되고 있고, 현재는 많은 관광객들이 오는 명소가 되어있다고 한다. 이곳도 다른 성안마을과 마찬가지고 문화재보호구역으로 지정이 되어 여러 가지 제약에 걸려 주택을 개보수하는 것조차 까다롭다고 한다. 그래서 예전에는 골목에 동네 불량청소년들의 패싸움도 빈번하여 주민들이 어두워지면 밖에 나가는 것조차도 무서워하곤 했다는데, 여러 뜻있는 예술가들과 주민들이 합심하여 거리를 벽화로 조성한 결과, 지금은 수원의 새로운 관광명소가 되었다고 한다. 물론 그 구심점 역할을 하게 된 곳이 “대안공간 눈”이었다. 차 한 잔씩을 하고 밖으로 나왔다. 비가 멎었다.
 
바로 앞에 “골목길”이라는 음식점 팻말이 보인다. 예전에 김치찌개로 유명한 집으로 이해찬 전 국무총리까지 다녀가실 정도로 맛 집으로 유명세를 떨치던 곳이었는데 지금은 지역 틈새. 유휴공간으로 활용해 북수동 경로당 어르신들과 문화소외계층에게 문화적 혜택을 주기위한 소통의 장으로서 활용되어지고 있다.
 
여기저기 그려놓은 벽화가 지난번 지동에서 보았던 벽화와 사뭇 다른 모습이었다. 지동과는 달리 소소한 멋이 있었다. 특히나 인상 깊었던 금보여인숙의 물고기벽화이다. 물고기 벽화는 남미출신 작가가 그린 그림이란다. 그래서 그런지 물고기형상이 마치 한 마리의 거대한 아마존의 열대어 같았다. 밤에는 불빛에 의해 비늘이 반짝거린다고 한다. 밤이 되면 용이 승천하듯 벽화 속 물고기도 이곳을 헤엄쳐 다닐 것만 같다.
 
이곳 북수동에는 여관이 많다. 그 이유는 조선시대 정조임금이 화성을 만들던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정조임금은 사도세자의 묘를 만들기 위해 자신의 생활터전을 잃게 된 백성들을 위하여 그들이 이전하는 이곳 수원화성에서 경제활동을 할 수 있게 농업과 상업 활성화 정책을 펼쳤다. 화성 주변에 유달리 저수지가 많은 것도 (만석거나 서호천과 같은 큰 저수지를 만들어 농업정책에 힘을 썼다) 그러한 이유이다. 뿐만 아니라 전국 팔도의 부자들을 찾아가 화성에서 장사를 하면 인삼무역의 특혜를 주는 조건으로 화성에 상권을 형성하게 하였다. 뿐만 아니라 화성 내에서 상업을 번성시키기 위하여 2가지 특권을 주었는데 그것은 관을 짜는 것과, 갓을 수리하는 것이었다. 그 당시에는 지정된 사람 외에는 그 업무를 할 수가 없었으며 오늘날 독과점과 같은 것이다.
 
수원의 팔부자거리는 그때 조성되었던 것이며 이러한 상권은 오늘날까지 이어져 얼마 전까지도 수원은 경기남부 최대의 상권지역이었다고 한다. 그래서 지방에서 올라오는 상인들이 하룻밤 묵어가는 경우가 많아 작은 여관들이 곳곳에 있다. “금보여인숙”도 오랜 전통을 자랑하는 여인숙이다. 하지만 지금은 상인들보단 관광객들이 더 많이 수원을 찾아오다보니 여인숙보단 모텔이나 호텔을 선호하여 현재 “금보여인숙”은 서민들의 달방으로 전락하여 근근이 그 명맥을 이어나가고 있다고 한다. 일본에선 오히려 오래된 여관이 “료칸여행”으로 각광을 받는 것에 비해 우리는 현재 외면당하고 있다는 사실이 조금 아쉬웠다.
 
“금보여인숙”을 나와 조금 가다보면 “문방구 거리”가 나온다. 이곳이 바로 그 유명한 “팔부자거리”이다. 지금은 거리가 쇠퇴하여 혼자서 걷기에는 조금 을씨년스럽게 보인다. 거리를 걷다보니 다시 한 번 예전의 명성이 살아나서 이 거리에 활기를 불어넣어주길 바라는 바램이 생겼다. 팔부자거리를 걷다보니 수원천을 만나게 되었다. 수원천의 별칭은 “유천”이라고도 하는데, 그 이유는 왕버드나무가 많아서라고 한다. 버드나무가 많아서인지 화성의 성곽을 따라 모형을 만들면 버드나무잎 모양이라 수원화성을 “유성”이라고도 부른다. 수원천에서 바로 옆다리를 건너니 “수원 화성 박물관”이 보였다.
 
“수원화성박물관”은 세계문화유산 수원화성의 모형과 관련 유물을 전시해놓고 있다. 왕버들 잎모양을 닮은 수원화성의 모형도를 보니 옛이야기가 새록새록 들리는듯하다. 문무에 능하셨던 정조의 모습을 반영하듯이 장용영군사를 직접 지휘하기까지 하였다는데, 그 모습도 고스란히 재현되어있었다. 수원 화성을 축조하고 그 수고를 축하하기 위한 “낙성연”과, 팔부자 거리의 모형도 눈에 띄었다.
또한, 초대 화성 유수이자 황성성역 총리대신이었던 번암 채제공 선생의 초상화(보물 1477호)도 전시되어있는데 초본3점과 향낭도 함께 기증이 되어 있어서 역사적으로 사료가치가 높다고 합니다.
 
 
다음으로 향한 곳은 “수원사”이다. 수원사는 용주사의 말사로 1920년 “불교보급소”로 첫 출발을 하였고, 전국 3대 규모의 포교당 이었으나, 내부 사정으로 인해, 지금은 자체 운영되고 있으며, 2007년에 시민을 위한 문화의 공간과 불교가 접목된 지금의 “수원사”로 불리워지고 있다고 한다. 특이한 점은 “원불” 6천67불이 모셔져있는데 며칠 후면 수원사 이래 10년 만에 이루어지는 원불 세안식이 있다고 한다. 우리는 관세음보살님이 모셔져 있다는 “관음전”과 납골당 역할을 하는 “유불”에도 들렀다. 유불에 있는 비취색의 영롱한 구슬 안에는 사리형태로 보관되어 있는 게 처음 보는 이로 하여금 사후세계에 대한 많은 생각을 갖게 하였다. 앞으로 살아가는 삶에 좀 더 의미 있는 인생살이를 해야겠다는 마음이 들게 하였다.
 
수원사 옆에는 1평 남짓한 작은 잡곡가게가 하나있다. 보리쌀아저씨네 집이다. 한 때는 잘나가는 입시학원을 운영하였으나 IMF때 어려워져 지금의 가게를 열게 되었단다. 다른 가게와는 달리 고사리며, 고들빼기, 씀바귀, 둥글레... 등의 나물류는 강원도에서 직접 5일장을 돌며 물건을 가져오고, 콩이며 쌀 같은 잡곡류는 경기도 것을 취급하며 순수 국산만을 고집하신단다. 수원사 옆에 자리를 잡은 것은 17년이나 되었다는데, 틈틈이 그림 작업을 하시어 개인전까지 열 정도로 실력 있는 한국화 화가이시다. 잡곡가게와 한국화 화가라는 어울릴 것 같지 않는 어색한 조합이지만 우리 것을 고집하며 지켜나간다는 공통점이 묘하게 어우러져 멋지게 사시는 분 같아 부럽기도 하였다.보리쌀 가게를 옆으로 수원천변을 따라 걷다보니 작년에 복원된 “남수문”이 보인다.
 
“화성성역의궤”와 문화재 전문가의 고증을 거쳐 90년 만에 복원이 되었다는데, 아직은 옛 것과 새로 복원한 남수문이 어울려지지 않아 부자연스러운 모습이 낯설게만 느껴졌다. 아마도 세월이 어느 정도 흘러 남수문에서 세월의 흔적이 보이면 자연스러워지겠지? 남수문을 건너온 자리에 영동시장이 보인다. 영동시장 입구에 “영동아트포라”가 있다.
 
 
이곳은 전통시장 활성화를 위해서 “수원문화재단”에서 시장과 문화예술을 접목시켰다. 우선 전통시장에 문화예술을 접목시킬 예술가 팀을 공모한 결과 9개의 팀이 선발 되었다. 선발된 9개 팀이 모여서 서예, 금속, 한지,도자,직물,회화,사진,독립영화,염색 공방을 운영하며, 일반시민을 대상으로, 체험활동과, 자격증 취득을 위한 교육 및 판매를 하는 곳이다. 전통시장의 상인들과 작가들이 상생협력 프로그램(시장+작가 비즈니스 플랫폼)으로 운영되고 있다. 하지만 아직은 시민들에게 알려지지 않아 좀 더 많은 시민들이 공유할 수 있도록 적극적인 홍보가 필요해 보였다.
 
지난 한 달여간 “길 위의 학교”가 진행되었다. 오늘로서 그 마지막 길을 걸으며 대단원의 막을 내렸다. 처음에는 조금은 낯설어 어설퍼했지만, 회를 거듭할수록 우리 고장의 숨은 매력을 볼 수 있어서 참 좋았고, 특히나 사람과 사람과의 만남이 있었기에 더 정이 가는 프로그램이 아니었나 싶다.
 
우리는 세상을 살면서 수많은 인연을 마주하게 된다. 만나서 어색하고 불편한 인연이 있기도 하고, 만난 지 얼마 되지는 않았어도 어느새 가슴에 오롯이 들어온 고운 인연도 있다. 불교의 법망경(梵網經)에는 옷깃 한 번 스치는 것도 500겁의 인연이 있다고 하니 스치는 인연조차 얼마나 귀한지 새삼 깨닫게 된다. 우리는 어떤 인연으로 남게 될까? 어색하고 불편한 인연이 아닌, 반가운 인연이 되었기를 바라며, 아쉬움으로 글을 마친다.
 
글_김정현(공정여행가 1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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