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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인생의 글쓰기 후기

작성자
이경
작성일
2013.11.06
조회수
6182/1



<내 인생의 글쓰기 후기>
 
11월 4일 월요일 아침 10시. 직장인들의 바쁜 출근시간이 지나고 거리가 한산해질때쯤 우만동 수원시 평생학습관 205호는 왁자지껄 소란스러워진다. 내년 1월 첫출산을 앞둔 만삭의 햇살맘이 빵을 사들고 들어선다. 이마에 송글송글 땀방울이 맺혀있는걸 보니 계단을 조심스럽게 올라왔나보다. 뒤이어 공무원으로 정년퇴직을 하신 사과나무님이 농장에서 가져온 유기농사과를 한보따리 책상위에 쏟아놓으신다. 이분은 수업기간 내내 자신의 농장에서 수확한 농작물을 선물해주신다.
 
육아휴직으로 학교를 잠시쉬고있는 헌주맘은 빈번한 가족여행으로 인해 얼굴이 살짝그을린 모습이다. 귤 두봉지를 슬쩍 올려놓고 말없이 자리에 앉아버린다. 암수술후 완치를 앞둔 목마와 숙녀님은 지난주 시가 예선에 당선되어 고창 서정주문학관에서 1박2일 모임을 하고 오셨다. 요즘 그녀의 말과 행동은 모두의 관심을 받는 중이다. 올초 명예퇴직을 하신 느티나무님, 여사업가로 한획을 긋고 잠시 쉬는 나무님등. 통통튀는 매력의 소유자 김소라 선생님까지 15명이 모이자 이내 글쓰기 수업이 시작된다.
 
광교산야외수업과 유기농사과 올 7월 여름학기부터 글쓰기 모임에 참여하게된 나는 참가자들 중 가장 특별할 것이 없는 삶을 살았다. 25살에 결혼하여 이듬해부터 연년생으로 딸 둘 낳고, 20여년 넘게 남편 직장생활 뒷바라지하며 그 와중에 10년 넘게 일도하고...남들도 그러하듯 자식키우고 가르치며 바쁘게 살았다.
 
어느날 문득 ‘내인생의 글쓰기’ 란 프로그램이 눈에 띄였다. 열심히 살았고, 아이들이 잘 자라줬고, 때에 맞는 고민만 하면서 살아온 인생이지만 그래도 평범하게 살아온 내 인생을 글로 남기고싶었다. 초등학교 다닐때 써본 일기와 서럽고 말로 표현못할 괴로움을 삭히고자 수첩에 가끔 남긴 메모가 전부인데 글쓰기가 가능할까? 맞춤법도 엉망이고 기승전결도 불가능하고 게다가 난 이과쪽 성향이다. 수학문제가 깔끔하게 풀릴 때 만족스럽고, 사물에 대한 관찰과 지식습득이 딱 좋은 체질이다. 신문과 책을 많이 읽는 것도 아니라서 지식과 교양이 종이한장 두께다. 이런 내자신에게 어느날 문득 글을쓰고 싶은 욕구가 생기다니.
 
첫날, 옆자리에 앉은 참가자가 글을 써서 20만원의 상금을 받고 수원시에서 발행하는 신문에 글이 실렸다는 자기소개는 아찔했다. ‘역시 이런 사람들이 오는 수업인가봐, 내가 왜 왔을까?’ 첫수업날 다시는 안 올 것 같은 표정이었던 나는 그래도 꿋꿋하게 넉달넘게 자리를 지키고 있다. 어떻게든 글을쓰고 말겠다는 오기와 어쩌면 마지막 기회가 아닐까하는 간절함이 컸나보다. ‘못쓰면 어때~ 내이야기를 솔직하게 쓰면 되고, 내가 아는사람들한테만 보여주면 되지’ "나의 롤모델 박완서 작가도 40넘은 나이에 시작했는데 나도 늦은건 아니야" 가끔 단순하고 무식한 사고방식은 살아가는데 요긴하다.
 
 
김소라선생님과 풍성한 먹거리들 지난주 있었던 이야기를 풀어놓는 첫시간은 참가자들이 돌아가며 간단하게 진행된다. 오늘은 단연 시인으로 거듭난(?) 목마와 숙녀님의 후일담이 귀에 쏙쏙 전해진다. 그녀는 어릴적 작가가 꿈이었고 이젠 시적 언어로 모두를 들었다놨다 하는중이다. 수업은 매주 특별한 주제로 두시간이 금세 지나간다. 집단 상담 프로그램같기도하고 종교집단의 예배 분위기일 때도 있다. 수업 후 후기와 숙제는 부담되지만 자신감을 갖는데 충분하고 가끔은 글이 봇물처럼 터져나와 주체할 수 없는 지경의 참가자가 나오기도 한다.
 
서로의 글을 읽으며 위로하고 격려하며 시간이 흐를수록 글과 사람의 매력에 빠져들고만다. 어느 모임에선 자신의 겉과 속을 달리하고도 자연스러울 수 있다. 그런데 이 글쓰기반 모임은 솔직할 수밖에 없다. 글에서 이미 진실한 자신의 모습이 표현되고 있으니까. 살아온 지난날의 모습도 그렇고 지금 현재의 모습도 다 보여준다. 수업은 두시간이지만 다음 수업까지 카페에 올라오는 글들을 읽다보면 수업은 매일 계속된다. 매일 만나서 이야기하는 듯 언제 어디서 어떻게 지내는지 훤히 보인다.
 
수업후 점심을 먹고 커피한잔 나누는 시간이 있어서 월요일 오후 다른 약속은 불가능하다. 오늘은 사진작가로 활동하고있는 송운님이 집에서 담근 막걸리를 두병 준비해오셨다. 어느때보다 점심은 맛있고 흥에겹다. 먹으러 오는 사람들처럼 매주 수업시간은 먹거리가 풍성하고 그래서인지 수업시간내내 딱딱함보다는 따듯함이 넘쳐난다.
 
 
담쟁이카페에서 함께하는 시간들이 좋다 담쟁이카페에서 테이블을 붙이고 둘러앉아 커피마시며 마지막 수다삼매경에 빠지는 시간은 김소라선생님이 가장 즐기는 시간이다. 그녀는 주제도 필요없고 형식도 탈피한 이 시간을 통해 참가자들이 많은 것을 배우고 익히길 바라는 것 같다. 모두가 가르치고 배우며 함께 성장하는 교학상장(敎學相長 )의 이념이 실현되고 있다. 책도 권하고, 전시회소식도 알려주고, 놀러갈 틈도 엿본다.
 
학령기 아이들 귀가시간이 되어서야 우리 모임은 정리되고 아쉬움에 작별인사가 길어진다. 발길돌려 집에 도착하는데로 글들이 쏟아질 것이다. 각자 열심히 생활하며 틈틈이 썼다지웠다 반복한다. 임시저장에 담긴 글을 슬며시 꺼내 손질도 해본다. 쑥스러워 결국엔 휴지통에 버려질 글일지라도 내마음속 깊은곳에서 숨겨왔던 아픔이 치유됐을거라고 믿는다. 아이가 뒤집기할 때, 처음 문고리를 잡고 일어섰을 때, 처음 자전거를 탔을 때, 학교에 입학했을 때, 첫사랑에 눈떴을 때, 첫직장에 출근했을 때, 첫아이가 태어나던 날에 세상은 전혀 다른 모습으로 다가온다. 이제 글을 쓰기시작하면서 그 세상이 다시 달라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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