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겨울, 채 운 강사님의 강의를 처음 듣고, 기억력이 감퇴해가는 것을 방치한 채 게으름과 무지에 끌려가는 나를 직시하고 책을 다시 제대로 읽어야겠다고 다짐했었건만! 지켜내기 어려웠고 실패했다.
강의는 백번 들어도 휘발되니 책을 읽어야 자신을 만날 수 있다고 한 내용이 맘에 남았었는데, 몇번의 시도와 메모 두어번 하고 멈췄었다. 채 운 강사님처럼 공부와 노는 것이 뒤섞여 있는 삶을 살고 싶었는데, 일과 일상에 쫒겨 살았더랬다.
그래도, 책에 대한 짝사랑은 여전했었는데, 학습관에서 다시 채운 강사님의 [인생의 가을과 겨울을 살아내기:노년과 죽음에 관한 고전 읽기] 강의를 들으면서, 다시 책사랑을 이어갈 에너지를 공급받았다.
지하철로 퇴근하면서 19시 정각에 시작된 강의를 들었다. 강의 시작하기 전 강사님이 레프 톨스토이의 <이반 일리치의 죽음>을 읽으면서 의미있고 기억에 남아 나누고 싶은 문단을 읽어줄 학습자가 있는지 물었고, 두 명의 학습자가 후반부의 이반 일리치의 심정을 읽어주었는데 명확히 기억하지 못하는 내 기억력이 많이 아쉽지만 그분들의 음성과 나눔이 참좋아서 이후 강의가 더 와닿았다.
익숙한 것들로 둘러싸인 죽음이 아닌, 여인숙.. 길 위에서 생을 마친 작가, 톨스토이의 죽음에 대한 에피소드를 비극이 아닌 누구에게나 있어도 되는 죽음으로 나눈 것도 와닿는다.
소설 후반부의, ‘끝난 건 죽음이야’. 가장 이 소설에서 수수께기 같은 말,, 끝난 건 죽음이야. 죽어가면서 생각한 톨스토이가 이반리치의 입을 빌려 말한 이야기... 이 책은 ‘형언할 수 없는 것’인 ‘죽음’을 탐색하며, 죽음이 삶을 둘러싸고 있는 동시에 삶에 스며들어 있으며, 한계와 모순, 장애라고 생각한 ‘죽음’이 역설적으로 삶의 조건이 된다고 말했다. 생생한 긴장과 시적인 직관 속에서 드러나는 찬란한 죽음에 관한 언어들은, 내가 한 번도 느껴보지 못한 방식으로 ‘죽음’을 표현했다.
죽음이 무거운 우울감없이, 인생의 가을과 겨울 이미지 뿐만이 아닌, 찬란한 봄과 싱그럽고 역동적인 여름으로 다가오는 느낌이 나쁘지 않았다, 그 뭐라도 환대할 수 있었을 것 같은 느낌이랄까.
우릭가 행복한 삶을 누리기 위해 애쓰는 것 자체가 삶의 의지일텐데, 어쩌면 무수한 죽음을 동반하고 있는 것이 삶이 아닐까 한다는 채 운 강사님이 ‘삶과 죽음으로 불면의 밤, 오늘 하룻밤 정도는 고민하면서 불면의 밤을 보내보세요~ 모두 잘자지 맙시다, 다음달에 만나요’로 강의를 마무리했다.
위트넘치는 인삿말에 zoom으로 환희 웃은 학습자들이 보였다.
늦은 저녁의 강의가 야식보다 맛났다. 모두 다음달 zoom강의에서 다시 만나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