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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봄없는 돌봄, 두 번째 강의, 돌봄 현장 이야기에 전율하다...

작성자
유승연
작성일
2022.03.24
조회수
1473/2
“여보, 1년이 몇 개월인지 알아?” “그러엄, 내가 그런 것도 모를까봐? 15개월이지!” 남편이 시부모님의 대화를 전해준 어제 시아버지의 장기요양인정서가 우편으로 도착했다. 장기요양 4등급을 받아서 근처의 노인주간보호센터에 다니는 시아버지의 나머지 시간의 돌봄 공백을 채워줄 대책이 필요했다. 센터 차량이 집앞에 내려주고 나서 잠깐 사이에 시아버지가 없어져서 다른 동에서 발견이 되었다. ‘키 169cm에 검은 색 상의를 입은 김 *태 어르신 실종’을 알리는 문자가 우리 가족의 일이 될지도 모른다. ‘노인이 할 수 없는 것을 생각하지 말고 지금 할 수 있는 것을 보라’는 최현숙 구술생애사 작가는 2022년 대한민국의 돌봄 현장 한가운데에서 일하면서 돌봄이 갖는 의미를 온 몸으로 전하고 있다. 코로나 팬데믹이 오기 전인 2018년에 알츠하이머를 앓던 어머니를 떠나보냈다. 최현숙의 부모는 어머니 생의 마지막 몇 년을 실버타운에서 보냈다. 현재 94세인 아버지는 어머니의 무의미한 연명치료를 거부하는 데 동의했다. 그 과정에서 자식 5남매는 자신의 임종에 대해 여러 번 생각을 바꾸었다. 요양보호사로, 노년 구술생애 연구자로, 몇 권의 책을 낸 저자로 살아온 최현숙은 형제들에게 돌봄의 현실을 알리고 부모의 돌봄을 상의했다. 어머니의 마지막 몇 년은 실버타운 근처에 방을 얻어서 병원에도 모시고 가고 자주 어머니를 방문하면서 치매로 정신이 무너져가고 노쇠로 신체도 약해지는 어머니의 마지막을 곁에서 지켜보고 기록했다. 그 기록이 <작별 일기>다. 2시간 여를 채운 강의는 돌봄 현장에서 10년이 넘게 지내온 최현숙 강사의 펄떡이는 물고기처럼 생생한 경험으로 가득했다. 도저히 노인들의 사고방식을 이해할 수 없어서 광화문의 태극기 부대를 찾아가 이야기를 들은 일이나 치매가 노인들을 어떻게 달라지게 하는지, 돌봄 현장에서 대부분이 50대 이상이고 경제적으로 어려운 계층 여성인 돌봄노동 제공자들의 인권이 어떻게 침해당하고 있는지를 전했다. 책에는 저자의 부녀 관계가 얼마나 좋지 않았는지 스무 살에 집을 나와 이른 결혼, 이혼을 겪은 이야기가 나온다. 지금 아버지와의 모습을 보면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다. 아버지와 화해를 못하고 불편한 관계인 채로 떠나보낸지 이제 막 2년이 된 나로써는 여러 가지 생각을 하게 만드는 대목이었다. 강의에서 최현숙은 아버지와 화해를 한 것이 아니라 아버지를 이해하려고 노력했다고 했다. 가까이에서 부모의 일상을 돌보고 지켜보며 기록한 몇 년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어떤 임종을 맞이하고 싶은지 질문을 받자 강사는 치매가, 준비할 수도, 준비한다고 대책이 있지도 않은 노년이 두렵지는 않다고 했다. 가난하고 병든 노인들을 많이 만나고 그들의 삶을 듣고 기록하는 일을 오랫동안 하면서 노년의 현실을 보니 생각만큼 두렵지는 않았다고 했다. 장례조차 가족장이 아니라 의미있는 관계를 맺어온 친구, 지인들과 함께하고 싶어 자녀들의 동의까지 얻었다고 했다. 최현숙은 자신의 임종을 준비했다. 하루하루의 치열한 삶 속에서 평생 동안 자신을 옥죄던 ‘가족’이라는 울타리를 벗어나 자유로운 죽음과 그 이후의 삶을 채워줄 의미있는 관계를 마주한 것이다. 예전에 주간보호센터에서 본 전광판 시계를 시댁에 사드려야겠다. 시아버지가 1년이 몇 개월인지 알 수 없어도 오늘이 몇 일인지, 무슨 요일인지 알 수 있을 것이다. 하지 못하는 것 대신 지금 할 수 있는 것을 찾아드리는 돌봄을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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