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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침반 돌봄 강연] ‘의료 결정은 어떻게 구성되는가?’/ 의료 인류학자 송병기 님의 강연을 듣고

작성자
신연정
작성일
2022.03.22
조회수
1585/2



[시민기획단 나침반 기획강좌] ‘돌봄이 없는 돌봄’: 1강 ‘의료 결정은 어떻게 구성되는가?’-송병기(의료 인류학자) 드디어 오미크론이 우리 집 담장을 넘었다. 4인 가족 가운데 배우자와 큰아이가 연속 감염, 나는 이들의 재택 치료 돌봄을 전담하는 주부다. 독박 육아했던 예전 기억이 스멀스멀 되살아 난다. 격리 기간이 끝나면 단군신화에서 웅녀가 그러했듯 좋은 사람이 돼 나타나 준다면 얼마나 좋겠는가? 망상부터 떠오르는 것 보니, 이것 참 돌봄을 시작도 하기 전 나도 참 막막한가 보다. 3월 16일 수요일, 시민기획단 나침반 기획강좌 ‘돌봄이 없는 돌봄’이 시작됐다. 다행히 온라인 강연이라 ‘격리인 1호’에게 베란다로 뚫린 안방 창을 통해 저녁밥을 주고, 노트북 앞에 앉았다. 격리인이 목 통증을 호소하지만, 그냥 눈 딱 감고 Zoom 창을 바라봤다. 하루 만에 온갖 걱정 근심으로 퀭해진 멍한 내 눈이 모니터에 반사돼 비친다. 도저히 할 수가 없다. 비디오 켜기만은. 의료 인류학자 송병기 님의 강연 제목은 ‘의료 결정은 어떻게 구성되는가?’다. 이번 강연을 통해 시민들이 ‘돌봄’에 대한 자신의 언어를 찾게 되길 바란다고 한다. 돌봄에 대한 나의 언어라….‘이러다 내가 죽을 지경’이 번득 먼저 떠오른다. 정신 차리자. 코로나 기간 보이지 않는 죽음과 고통이 돌봄 영역 안에서만 해도 얼마나 많았던가? 엄살은 금물! 여기서 부터는 강연 내용, ‘돌봄’에 대한 이야기는 우리 일상과 무척 가깝지만 그래서 더 하기 어려운 면이 있다. 공기와 같아서, 너무 근원적이라. 병원에 갔을 때 환자는 안보고 컴퓨터 모니터만 바라보는 의사에게 상처받은 경험이 있다면, 그건 오해라고 한다. 서양 의학은 철저히 사람의 몸을 공간화 시키고 지시하는 속성이 있기 때문에, 모니터에 드러난 몸의 문제를 보는 것이 곧 환자를 잘 살피는 거라고. 바꿀 수 없는 인식체계라고 하는데, (나는 이해가 잘 안 됐다. 이런 상황은 사실 꼭 의료뿐만 아니라 다른 영역에서도 경험한다. 학교 상담을 하러 갔는데 선생님이 아이의 자료를 띄워놓은 컴퓨터 화면만 바라본다든지, 은행 창구에서 은행원이 모니터만 보면서 사인을 하라, 정보 동의를 하라 한다든지 그럴 때 나는 마음이 아프다. 사람과 사람이 만나는 것이 아니라 사람과 서비스가 만나는 기분, 이상한 이 기분을 오늘 강연이 끝나면 풀 수 있을지?) 송병기 님은 의료계와 시민 사이에 생각의 간극이 무척 크다고 한다. 의료계는 국가가 너무 많은 개입을 한다고 주장하고, 시민들은 의료가 지나치게 시장화 됐다고 주장한다. (이 생각의 차이만큼 의료 결정에 대한 불신이 싹튼다. 불신이 자리한 곳에서 돌봄의 제자리를 찾기란 어쩌면 불가능할지도 모르겠다.)->괄호 안은 나의 생각. 잠깐 휴식 시간에 우리 집 ‘격리인 1호’가 내놓은 식기를 빠르게 씻기로 했다. 평소였다면 식기 세척기에 넣을 텐데, 소독 과정을 거치려니 10분 안에는 안 될 일이었다. 아픈 사람을 돌보는 일은 무척이나 품이 많이 들고 섬세해야 한다. 송병기 님의 강연을 이어 듣는다. 이번엔 돌봄 현장의 이야기다. 요양원 어르신들의 콧줄(비위관삽입)에 관한 여러 사례다. 콧줄이 이렇게 중요한 의료 결정이라고는 미처 생각지 못했다. 아직 내가 어르신을 돌본 경험이 없어서일 거다. 으레 음식을 씹기 힘든 어르신이 콧줄을 하는 건 지당한 선택으로 보였는데, 꼭 그렇지 않다고 한다. 송병기 님은 연구를 위해 무연고자와 저소득층이 주요 이용자인 요양원을 살필 기회가 있었다. 그 곳의 어르신들은 콧줄을 달고 평균 10년 정도 누운 상태로 생존을 한 후 임종을 맞았다고 한다. 욕창의 고통은 말해 무엇 할까? 한편 강남에 있는 엄청난 대기자를 자랑하는 요양원의 경우 대조적으로 콧줄을 하지 않는 것이 입소 조건 중에 하나였다고. 비교적 경제력이 있는 어르신들은 먹는 문제에서 부터 상대적으로 자율성을 갖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콧줄이 보여주는 불평등한 의료 현장이다. 존엄을 담보 받지 못하는 상태로 생존을 연장하는 것이 과연 윤리적인가? 질문하게 된다.) 앞선 사례의 경우 ‘콧줄’이란 의료 선택을 결코 입소한 어르신이 한 것이 아니다. 연고가 아예 없거나 가족이 있다고 해도 연락이 닿지 않는 경우가 많아, 요양원의 의료진들에 의해 생명 윤리라는 명분으로 콧줄을 달기로 결정한 것이라고 한다. 어르신은 과연 콧줄을 원했을까? 묻는다면 절로 고개를 저을 수밖에. 요양 병원 카운터에서 대체복무를 하는 스위스의 "돌봄 복무제" 사례가 인상적이다. 인간의 기본권인 ‘돌봄’을 아예 헌법에 명시하자는 주장도 있다고 송병기 님이 알려준다. 돌봄에 대한 공적 논의의 장이 지금부터라도 더욱 활발하게 만들어지길 바란다는 말, 오늘 강연도 그런 자리가 될 수 있다는 얘기에, 뭔가 명확한 답을 찾지는 못했지만 이어질 나침반 강연에서 또 다른 실마리를 찾을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해본다. 다음 강연은 3월 23일 수요일 오후 7시 30분 최현숙 구술생애사 작가와 함께하며, 주제는 ‘노인 돌봄 현장의 이야기를 듣는다’이다. 오늘 강연을 통해 돌봄 담론의 불쏘시개가 되고 싶다는 송병기 님의 마지막 말에 뜨거운 마음을 보태며, 우리 집 ‘격리인 1호’의 열에 들뜬 목을 위해 나는 줌을 끄고 생강차를 탄다. 지금 나에게 누군가 돌봄이 무어냐고 물으신다면, 지금 여기서 생강차를 타는 내 손길이 아니겠냐고 답해 보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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