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습관 [다정노트] 연재를 시작합니다. 코로나19로 학습관이 문을 닫은 동안에도 시민들의 배움은 오프라인에서 온라인으로 혹은 학습관 밖에서 소규모로 계속 이어졌습니다. 하지만 매우 답답하고 서로의 안부가 궁금한 날들이었어요. 그 마음을 담아 학습관 사람들의 소식을 매주 화요일과 목요일에 [다정노트]란 이름으로 전합니다. 팬데믹 기간 우리들의 배움과 일상의 분투를 만날 수 있습니다. 지난 [다정노트]에서는 학습자들의 안부를 들었고 이어서, 학습관의 봄을 준비하는 학습관 직원들을 만나보았습니다. 이번 주에는 학습관에서 가장 오래된 동호회의 하나인 목공방 활동 후기가 이어집니다. 팬데믹 이후 새롭게 변신한 목공방을 가득 채울 활기찬 공구 소리를 기대하면서... #[다정노트]를 연재하는 시민기획단 나침반은 수원시글로벌평생학습관에서 책을 읽고 토론하며 저자를 만나고 강연을 기획합니다. 만남을 기록하고 그 기록을 또 다른 시민과 나눕니다. ********************************* 수원시 글로벌 학습관 목공 동호회 화요거북이 유승연 50세에 나는 최저시급을 받는 노동자가 되었다. 퇴직을 앞둔 남편은 대학생인 아이들이 아직 취업하지 않은 시점에 부부 둘 중 누군가는 일을 하는 게 좋지 않겠냐고 권했다. 당장 먹고 살 돈을 벌어야 하는 것은 아니었지만 퇴직시기의 언저리에 남편이 겪고 있을 불안이 이해가 되어 동의했다. 마음에 걸리는 것은 몇 년간 활동해온 화요일 오전의 목공 동호회였다. 일을 하게 되면 더 이상 동호회 활동을 할 수가 없었다. 선택을 해야 했다. 일이냐 목공이냐…나는 잠시 재충전의 시간을 갖기로 하고 많은 아쉬움 속에 동호회에 휴식을 선언했다. 늦은 나이에 새로 시작한 일은 고되었고 피로했다. 몸이 힘든 것은 얼마든지 감당할 수 있었지만 최저시급 노동자로서 받는 정신적인 스트레스를 견디기는 쉽지 않았다. 그럴 때마다 나는 동호회에서 목공을 하면서 느꼈던 최고의 몰입과 집중의 순간을 떠올렸다. 하나의 가구를 만들기 위해 디자인을 고민하고 목재를 정확한 사이즈로 재단하여 직각을 맞추어 조립하고 튼튼한 구조를 위해 고민하던 그 순간들, 먼지가 풀풀 날리는 샌딩(연마)작업을 마친 매끈한 목재 표면을 만지는 순간의 희열, 대패로 목재를 미는 순간의 대패가 내는 스윽 소리와 나무 향기… 그 즈음에 목공방이 속해 있는 수원시 평생 학습관의 운영주체가 바뀌면서 목공방의 존폐 여부가 위기에 놓였다는 말을 듣고 힘을 모으기 위해 사람들이 모였고 동호회 활동을 쉬고 있던 내게도 연락이 왔다. 오랜만에 들어온 공방은 예전과 다름이 없었다. 나는 가지런하게 정리된 도구들, 기계들을 만져보면서 감상에 젖었다. 그리움이 밀물처럼 밀려왔다. 아니, 쓰나미였다. 지금 내 삶에 필요한 것은 단 하나였다. 나무가 주는 위로. 목공 동호회 화요 거북이가 주는 함께 하는 목공작업의 위안이 숨쉬기 위해 공기가 필요하듯 절실했다. 결국 많은 이들의 노력이 모여 목공방은 유지하기로 결정되었고 나는 일을 그만두고 화요 거북이로 돌아왔다. 사람들은 내게 왜 목공을 하냐고 묻는다. 힘들고 돈도 안 되고 심지어 돈이 많이 들고 위험하기까지 한 일을 왜 시간과 노력과 돈을 들여가면서 하는지 이해할 수 없다고 한다. 이 세상은 빠르게 변하고 효율성을 최우선으로 생각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 큰 흐름 속에 매몰되어서 살다 보면 지금의 나처럼 삶의 목적을 잃고 방황하게 된다. 지금이 백세 시대라고 하면 나는 인생의 반환점을 막 돌아선 시점에 놓인 셈이다. 이제 인생을 어떻게 살 것인지 고민하고 잘 정리할 것을 준비해야 하는 때다. 나무는 비효율적이다. 느리고 비싸고 손도 많이 간다. 계속 관리해주어야 하니 더욱 그렇다. 하지만 내 손으로 만들 수 있고 지속이 가능하고 주변 환경과도 어울리며 피해를 주지 않는다. 그리고 아름답다.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나무는 내게 말해준다. 더디고 힘들고 오래 걸리는 길도 함께라면 괜찮을 거라고… 딸이 스툴에 앉아서 밥을 먹고 있다. 상판이 커서 엉덩이가 편안하다고 애용하는 그 스툴은 재활용품이다. 상판은 딸이 아기 때 거기서 안자겠다고 버티던 원목 침대를 자른 것이고 다리는 남은 각재로 만들었다. 딸이 식사를 마치면 스툴은 내 보조작업대가 된다. 세탁기 옆에 애매하게 남는 공간에 놓을 선반을 만들기 위해 줄자, 종이, 연필을 올려놓고 치수를 잴 것이다. 만원 한 장이면 당장이라도 살 수 있는 선반이지만 내 쓰임에 꼭 맞게 시간을 들여서 만드는 기쁨과 사용하면서 느낄 만족은 값을 따질 수 없는 나만의 즐거움이다. 내 선반 디자인을 보고 기꺼이 열띤 토론을 벌일 동료들이 화요 거북이에서 기다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