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해 전부터 슬슬 철학에 관심이 생겨서, 책도 빌려보고 유튜브 강의도 들어보았다. 공부가 재미있기는 했지만, 수많은 철학자와 그들의 이론을 다 공부할 수도 없고 뭔가 속성으로 할 수 있는 방법이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에 철학을 전공한 지인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런데 돌아온 대답이란. “철학자들이 멋있어 보여서 동경하는 마음에 그런 생각이 들 수 있는데, 철학 공부해봤자 남는 거 별로 없어요. 차라리 부동산 공부를 해보세요. 신뢰감 주는 인상이어서 그쪽 방면으로 가면 돈은 잘 벌 것 같은데.” 늦은 나이에 괜히 시간만 허비할까 봐 나를 생각해서 하는 말이겠지만, 은근히 오기가 생겼다. 로미오와 줄리엣의 사랑이 더욱더 뜨거웠던 건 집안의 반대였다는 말처럼, 나 또한 철학 공부를 이어나가고 싶은 마음이 더 커져만 갔다. 이런저런 궁리 끝에 문득 철학에 관심을 두는 사람이 꽤 있을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철학 유투공(유튜브로 함께 공부하는 모임)’을 열었고, 모인 분들과 함께 매주 한 명의 철학자를 만났다. “저도 아리스토텔레스의 말처럼 논리적일 때 보다 에토스, 즉 말하는 사람의 품성에 의해 설득이 되는 것 같아요. 앞으로 논리만 내세우지 말고, 행동으로 보여줘야겠어요.” “오늘 니체를 만난 이상, 앞으로는 노예가 아니라 주인이 되는 삶을 살겠어요.” “‘페르소나(가면)’ 뒤에 감춰진 그림자에 관한 이야기가 가장 기억에 남아요. 서로의 그림자를 돌보면서 살 방법에 관해 고민해볼까요?” “<십우도>에서 고삐를 잡고 소와 씨름하는 동자를 보니, 내 안에서 일어나는 내면의 싸움이 연상되었어요.” “더는 남이 만들어놓은 기준으로 반성만 하며 살면 안 되겠어요. 노자의 말씀처럼 ‘기준의 학습자’가 아니라 ‘기준의 생산자’로 살래요.” 우리는 함께 영상을 보고 새롭게 알게 된 사실이나, 다르게 생각하는 점, 실천할 점 등에 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서로의 경험과 생각을 공유하면서, 철학을 내 삶에 적용할 연결고리를 찾아갔다. 시간이 지날수록 삶을 더욱더 풍요롭게 가꿀 수 있는 힘을 얻었고, 다음 시간에는 또 어떤 이야기가 오갈까 하는 기대에 가슴이 설렜다. 중년이라는 시기는 누군가의 딸이나 아들로서, 부모로서, 혹은 아내나 남편으로서 등 주어진 의무에서 서서히 벗어나, ‘나’라는 사람을 찾아 여행을 떠나는 시기다. 나를 찾아 떠나는 이 여행이 유투공과 함께 더욱 설레고 풍요로워질 것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