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과거의 미래다. 과거의 내가 그렇게도 알고싶었던... 제가 아버지께 산다는 것에 대해 아시겠냐고 여쭤본다면 어쩌면 ‘모른다’고 하실지요. 그러나 ‘모른다’고 대답하는 것, 그것이 바로 겪어 보고 아는 사람의 대답이 아닐까요? 어른이 되면 인생을 좀 알지 않겠느냐고 하는데 참으로 인생이란 알기 어려운 것 같다. 인생을 알고자 하는 과정이 바로 인생이라고 아버지는 겨우 느낀다. 이렇게 살면 50세 무렵에는 후회가 없고 나라와 겨레 그리고 이웃과 잘 살았다는 생각에 기쁨이 넘칠 것이다. 참으로 그런 세상에서 너희들은 살았으면 하며 반드시 그런 세상이 되리라고 확신한다. 소담스럽게 눈이 내리는 겨울, 섬진강으로부터 도착한 『봄을 기다리는 날들』의 안소영 작가를 만났다. 오랜만의 오프라인 강연에 하늘도 축복으로 함께 하는 듯 하다. 이 책은 민주화운동으로 옥고를 치른 아버지와 가족들이 10년 동안 주고받은 편지를 모은 서간집이다. 안소영 작가는 실존했던 역사적 인물을 소재로 하여 자료의 고증과 작가의 상상으로 그들의 생각을 복원하는 작품을 써왔다. 조선시대 실학자 이덕무의 이야기 『책만 보는 바보』, 시인 윤동주의 고뇌를 담은 『시인 동주』 퇴계 이황의 부인 권씨의 목소리 『당신에게로』 등이다. 수많은 백일장을 휩쓸던 중학생 시절, 상품으로 「유배지에서 보낸 편지」를 접했다. 유배 중인 다산 정약용이 가족들에게 보낸 서신을 모은 이 책에서 작가는 옥중의 아버지를 떠올리며 가슴이 뭉클해졌다. 감옥의 아버지를 친구들에게 설명할 수 없던 매서운 시절, 200년의 세월을 넘어 다산의 아들들이 오히려 가깝게 느껴졌다. 다산의 둘째 아들 학유의 시선으로 아버지 다산을 재조명한 『다산의 아버님께』는 그렇게 탄생했다. 둘째 아들을 주인공으로 한 이유는 매사에 반듯한 형보다 주량도 세고 아버지에게 때로 불평도 하는 그가 더 인간적으로 느껴졌기 때문이라고. 안소영 작가의 이야기 보따리는 다산의 가족이 겪었을 지난한 세월과 작가의 가족이 살아낸 힘든 시간들을 오가며 펼쳐졌다. 두 세기가 지났음에도 신념을 이유로 하루 아침에 사랑하는 가족과 떨어져 유배를 살아야 했던 다산의 삶과 민주화에 앞장서다 투옥된 교육자 아버지 안재구의 삶은 달라진 것이 없었다. 1814년 사헌부의 대계정지(형 집행 정지에 해당) 소식에 지붕도 수리하고 아버지의 옷도 만들던 다산의 가족의 모습에 특사로 정치범 일부가 사면된다는 소식에 아버지의 옷을 준비하던 어머니가 겹쳐진다. 어머니의 이야기가 나오자 작가의 낭랑하던 목소리가 흔들렸다. 중고생인 4남매를 키우며 생계를 위해 온갖 장사를 해내고 남편의 구명운동을 위해 사방으로 뛰어다니던 어머니는 결국 아버지보다 먼저 세상을 떠났다. 민주화 투쟁이 정점이던 1987년 6월 어머니는 구명운동에 전념했지만 노태우 당선 후 절망했다. 그 무렵 아버지에게 보낸 편지에는 힘들고 고단한 삶에 지친 마음이 드러난다. 그리고 다음 해 아버지, 안재구 교수는 석방되었다. "오랜 세월이 지나 편지를 읽어보니 마치 "소영아~"하고 부르는 아버지의 목소리가 들려오는 듯 해요." 강연 말엽에 작가가 미리 준비한 프린트에서 한 부분을 중학생 수강생이 읽기 시작했다. 소복소복 눈은 내리고, 소녀의 목소리는 또랑또랑한데 푸른 수인복의 아버지를 생각하는 고등학생인 작가의 모습이 눈앞에 그려졌다. 차가운 감방에서 사랑하는 막내딸의 편지를 읽고 눈물젖은 답장을 적어가는 중년의 아버지가 그려져 눈시울이 붉어졌다. 인생을 되돌아보면...“십대 때가 제일 좋았어요.“ “항상 가방에 편지지를 넣고 다니며 조금이라도 짬이 나면 야간 자율학습이건, 쉬는 시간이건 짬이 나면 아버지께 편지를 썼어요. 아버지가 좋아하시니까...감옥은 어두우니까 편지지는 화사하게...운동장에 해가 지는 모습, 음악시간에 배운 노래 이야기...어느 것 하나 넘기지 않고 자세히 관찰하게 되었죠." 옥중의 아버지에게 쓰던 편지는 습작이 되었고 고초를 겪는 아버지를 위로하기 위해 별 하나도 남다르게 관찰하여 편지지에 풀어쓰던 여고생은 작가가 되었다. 작가는 옛 편지를 보는 것이 지금을 환기하고 새롭게 한다고 했다. 과거에 연연하는 것이 아니라 바쁘게 살면서 잊고 지내던 것들, 일상의 깨달음, 삶의 신비함을 기억하게 만든다는 것이다. 우리 모두가 그런 생각들을 나누고 경험의 세계를 넓혀 깊게 공감한다면 다음 세대에게 좋은 말로 전할 수 있을 거다. 그렇다면 지금을 누리기 바쁜 세대에게 먼저 겪은 사람이 들려주는, 잔소리가 아닌 애틋한 전언이 되지 않을까? 강연 후기 중에서... “나의 부모의 역사를 서로 같이 알아간다면 지금 우리 세대에 있는 세대 갈등, 내면 갈등을 줄여갈 수 있지 않을까?“ “역사는 일직선으로 나아가면서 발전만 하는 것이 아니라 아무리 개혁하고 발전시켜도 지키지 않으면 거꾸로 돌아가 더 좋지 않은 세상으로 갈 수도 있다는 말이 기억에 남았다.” “편지를 통해 과거의 기록을 남긴 정약용과 안소영 작가님과 같이 그 시대가 가지고 있는 상황을 관찰할 수 있도록 기록해 나가야겠다고 느꼈다.” “엄마가 끌고와서 반 강제로 왔거든요. 하지만 마지막 30분 정도의 질문 시간은 꽤나 재밌게, 인상깊게 들은거 같습니다.(특히 진로에 관한 질문에 답하신 내용은 정말 공감되었던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