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북콘서트가 있는 아침의 풍경은 분주하다. 미니어쳐로 만든 골목 풍경에 쓰러진 사람(종이 인형)들을 일으켜 세우고, 전봇대에는 소변금지를 적어 넣는다. 전기줄에 참새도 한 마리 더 올렸다. 북콘서트의 막을 열어줄 공연자들의 자리를 세팅하려니 미니어쳐를 어디로 두어야 할지도 고민이다. 생각지 못한 복병이다. 이쪽 저쪽 고민하다 마땅한 자리가 없어 공연장 한쪽 끝에 둔다. 조명 하나만 있어도 좋을 텐데. 미니어쳐가 있는 곳 상단에 전단지를 이어 붙인 후 보면대를 하나씩 펼치고, 의자를 가져다 놓고 공연 무대 세팅을 끝낸 후 손님들이 앉을 테이블 세팅을 마쳤다. 그리고 커피 한 잔의 여유. 오늘의 시간을 만들어 내기까지 하나가 아니라 다섯이라서 더 좋았던 이유, 함께라는 것이다. 우리의 시간은, 그리고 이 공간은 여기를 찾은 많은 사람들이 함께해서 더 빛나게 될 것이다. 그런데 사람들이 보이지 않는다. 뭐, 늘 늦게들 오시니까 조금 있으면 이 자리가 가득 차겠지라며 아직 시간이 남았음을 애써 위로해본다.
북콘서트의 시작 - 수원하모니 기타앙상블과 함께 ⓒ수원시평생학습관
작가 심윤경을 만나다.
한 명 두 명 들어선다. 북콘서트는 도요새책방에서 하는데 전단안내가 영상강의실로 나가서 2층까지 갔다가 다시 오셨다는 분이 꽤 있었다. 실수다. 영상강의실 앞에 도요새책방에서 한다고 붙여두었어야 하는데... 익숙해졌다는 생각이 들 때쯤, 꼭 이런 미숙한 점들이 툭 튀어나온다. 너희들 아직 멀었다라고 말 하는 듯. 들어오는 손님들께 안내를 하고 있는데 피부가 하얗고 자그마한 앳된 여자 분이 들어온다. “출석체크 해주세요.”라고 했더니 작가님이시란다. 이런... 작가 얼굴을 못 알아보는 건 이제 내 전매특허가 될 것 같다. 그런데 “출석체크?”라며 어리둥절해 하신다. 미안한 마음에 리플릿에 있던 사진을 디밀었다. “작가님, 사진과 다르잖아요?” “사진 찍은 지 오래 되어서...” 웃자고 한 얘기에 오히려 더 미안해하신다. 몇 마디 나눠보지 않았는데 왠지 따뜻한 사람 같다는 느낌이 든다. 그녀의 소설이 그랬던 것처럼. 작가 자리에 앉지 않고 방청객들 사이에 앉아 기타 연주를 듣고 사회자의 진행을 주의 깊게 듣던 심윤경 작가님. 강연 내내 솔직한 자기 얘기를 가감 없이(내 개인적인 생각이다.) 들려주시는 모습에서 첫인상이 맞았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생물학자가 꿈이었던 소녀, 소설가가 되다.
작가 심윤경. 1973년생. 서울대학교 분자생물학과 대학원을 나왔다. 그런데 소설까지. 오늘 우리 북콘선트의 주제 도서인 「나의 아름다운 정원」은 그녀의 첫 작품이자 등단작이기도 하다. 첫 작품에 등단까지. 정말 워너비 작가이다. 그래서일까? 어떻게 이과를 진학했던 그녀가 소설을 쓰게 되었는지 궁금해서 찾아온 이들이 많았다. 그녀의 꿈은 생물학자였다. 그녀의 어머니는 책 속 주인공 동구의 엄마처럼 솜씨 좋고, 온 집안을 쓸고 닦고 깔끔하게 정돈하는 것을 좋아하는 그런 성격이었다고 한다. 그런 엄마에게 그녀는 엄마가 빨래를 하려고 주머니를 뒤지다 죽은 쥐를 발견하고 기함하게 만드는 그런 딸이었다고. 어린 시절 책의 배경이 되는 옥인동에 살았던 그녀는 옥인동 뒤의 인왕산 산자락을 타고 다니며 발견한 죽은 쥐를 주머니 속에 넣어 오곤 했다. 쥐를 키워보고 싶은데 어린 그녀로서는 산 쥐는 언감생심 잡지를 못하니 죽은 쥐라도 좋아라며 주머니 속에 넣어 왔다고 했다. 그렇게 생물학자를 꿈꾸던 그녀는 분자생물학과를 진학하게 되지만 그녀가 실험을 하면서 해야 했던 일은 많은 쥐들을 죽여야 하는 일이었다고. 실험이니 이런 일이야 인정한다손 치더라도 그녀는 이 일이 그녀의 적성에 맞는지 계속 의문시 했다. 실험을 하면 결과는 잘 나오는데, 그 다음을 생각할 수 없었다고. 다른 친구들은 실험 결과가 잘 나오지 않아도 그럴 리 없다며 이것 저것 바꿔가며 재 실험에 들어가곤 했는데 정작 자신은 실험 하나가 끝나면 뭘 해야 할지 잘 모르겠다는 것이었다. 그 막막한 벽 앞에서 그녀는 이 길이 자신의 적성에 맞지 않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녀는 사람들 얘기가 하고 싶었다고 한다.
북콘서트 강연 중인 심윤경 작가 ⓒ수원시평생학습관
그래서 그녀는 방송작가 아카데미를 다니게 된다. 그것도 1년 다니다 보니 적성이 아니었단다. 같은 글쓰는 직업이니 상관없겠거니 했지만 여러 사람과 함께해야 하니 많은 제약들이 있었다고. 자기 혼자의 세계가 중요했던 그녀에게 그것 역시 맞지 않았던 것이다. 그래서 그냥 썼단다. 뭐가 되나 하면서. 그녀는 그녀가 첫 소설을 썼던 그 시절을 행복으로 기억했다. 직장을 다녀와서 남는 시간을 쪼개어 신나는 기분으로 한 쪽씩 써 내려갔던 그때를. 그것은 그녀의 평화로운 저녁의 일상이 되었다. 그렇게 썼던 것이 지금의 소설이 되었다. 등단에 대한 부담감이 없진 않았지만 그래도 그때의 즐거움을 지금은 느낄 수가 없다고. 그녀는 취미생활처럼 글쓰기를 즐겨보기를 당부했다. 신입자만이 느낄 수 있는 즐거움은 그 때 뿐이라고.
내 삶에서 가장 행복했던 시절의 기억, 소설이 되다.
무엇을 쓸까? 그녀는 자신이 살았던 곳이 특별했음을, 그래서 그 이야기를 써보고 싶었다고 했다. 집 앞 베란다에서 청와대, 경복궁, 서울 정경이 내려다보이던 곳. 그녀가 사랑했던 할머니마냥 인왕산이 든든히 지켜주던 곳. 그곳에 살던 사람들의 이야기가 그녀의 첫 작품에 담겼다. 그녀는 처음 소설을 시작할 때 두 가지 모티브만을 가지고 시작했다 했다. 하나는 12‧12 사태 때 본 어마어마하게 큰 탱크, 아니 장갑차(지금 생각하기에 그것은 산타페 차량 정도의 크기인 듯 하지만 그 당시 어린 소녀였던 그녀에게는 정말 어마 어마하게 큰 것으로 비췄다고 한다.)와 다른 하나는 못된 시어머니에게 참고 살던 며느리가 고추장독을 던지는 장면. 고추장독이 깨지면서 용암이 분출하듯 쏟아져 나온 고추장이 방바닥 가득 번져나가던 장면을 어느 날 떠올리게 되었다고 한다. 자신도 소설이 어느 방향으로 갈지 알지 못했고 단지 이 두 장면을 향해 글을 써 내려가게 되었다고.
그녀의 가족들은 이 윗동네에서의 삶을 끔찍하게 생각한다고 했다. 수돗물도 나오지 않았고 그녀가 에버랜드만큼 신나게 뛰어놀던 바위 바로 옆이 벼랑이었던 곳. 그녀의 어머니는 자식들을 좀 더 나은 곳에서 살게 하려고 무던히 애썼고 그 결과 아랫동네로 이사하게 된다. 하지만 그녀가 기억하는 어린 시절 행복의 80%는 거의 윗동네에서의 기억이란다. 문 열고 나가서 아무 집에나 들어가도 가족처럼 맞아주던 곳. 동네에 있던 모든 집들이 그녀의 집이었었던 곳. 그런 그녀에게 아랫동네에서의 삶은 그녀가 함께했던 공동체라는 울타리로부터 그녀를 분리시키고 외롭고 우울하게 어린 시절을 보내게 했다. 그녀는 윗동네에서의 삶을 그녀의 인생에서 가장 소중했던 시간으로 기억한다. 그 윗동네에서의 소중한 기억들이 「나의 아름다운 정원」을 완성시켰다.
「나의 아름다운 정원」은 인왕산 산자락 끝 윗동네를 배경으로 한 70년대 평범한 가정의 이야기이다. 이 소설은 항상 살얼음판 위를 걷는 듯한 긴장감을 조성하는 어머니와 할머니 사이의 갈등 속에 이를 방관하거나 일방적으로 할머니 편을 들어 어머니에게 상처 주는 아버지를 보며 자라는 애늙은이 동구의 이야기이다. 이 살벌한 가족 관계에서 한 줄기 구세주와 같았던 어린 동생 영주의 죽음은 이 가정을 파경으로 치닫게 한다. 금이 간 유리처럼 금방 깨어져 버릴 것 같은 위태로운 이 가정을 지켜내기 위한 어린 동구의 고군분투가 어른들의 마음을 애잔하게 울리며 어린 시절의 추억 속으로 젖어들게 한다.
내가 살고 있는 공간, 그리고 삶
그녀의 이야기를 들으며 내가 살고 있는 공간은 나에게 어떤 의미가 있나를 생각하게 되었다. 나에게 그리고 내 아이들에게 내가 살고 있는 이곳은 어떤 의미일까? 경기도로 이사를 오게 되면서 내게 든 생각은 언제든 이곳을 떠날 수 있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작은 집을 구했고(전세가 너무 비싸서 이기도 했지만), 짐을 늘리지 않으려고 했다. 사람들과 만나면서도 그냥 잠깐 볼 사람들이었고 마음 속 깊이 두려 한 적이 없었다. 언제나 헤어질 수 있는 사람들이기에. 2년 마다 전세 재계약을 할 때쯤이면 어디로 이사를 가야하나? 아이들 학교는 어쩌지? 그래도 2년 터 잡고 살았다고 쉽게 다른 곳으로 떠날 생각을 못하게 된다. 그렇지만 해마다 오르는 전세 값을 감당하기에 내 주머니 사정은 넉넉치 않다. 나는 매일 매일을 살얼음판을 걷듯이 그렇게 살고 있다. 내 집 없이 살고 있는 많은 사람들이 나와 그다지 다르지 않다고 생각한다. 이렇게 많은 집들이 있는데 우리는 왜 이렇게 불안하게 살아야 하는 것일까?
집이 그냥 내가 사는 곳이라면 얼마나 좋을까? 그런데 한국 사람들에게 집은 자산이다. 많이 가진 사람들은 많은 집들을 사고 그렇게 재산을 불리고 불린 재산으로 또 집을 산다. 그런데 없는 사람들은 그들이 내놓은 집에 비싼 전세금을 내고 하루하루를 버틴다. 내 삶을 사는 것이 아니라 그냥 버티는 것이다.
우리의 도시에서의 삶은 왜 이렇게 척박한 것일까? 서울시립대 도시공학과 정석교수는 도시를 움직이는 거대한 힘의 논리를 재개발의 역학관계로 설명한다. 그는 재개발이 가장 노후화되고 건물과 기반시설이 열악한 곳, 재개발의 필요성이 절박한 곳에서부터 이뤄지는 것이 아니라 가장 돈이 되는 곳에서 시작된다고 말한다. 재개발은 주민들에게 금방 큰 이익을 가져다줄 것처럼 희망을 심어주지만, 실상은 주민들을 분열시키고 그들의 과거를 모두 지우고 없앤다. 그리고 재개발의 이익을 얻는 그 누군가에 우리 사회의 약자들은 포함되지 않는다. 재개발의 사례에서 알 수 있듯 도시도 돈이 되는 쪽으로 움직인다. 돈이 되는 곳이면 거대자본은 어디로든 갈 것이며 우리의 집과 마을도 예외는 아니라고 그는 말한다. 그는 우리의 소중한 삶터를 돈벌이 수단으로 넘겨줄 것인지 아니면 이웃과 함께 지킬 것인지 선택은 우리의 몫이라고 한다. 이 척박한 삶을 해쳐나갈 묘안이 정말 있는 것일까? 4월 북콘서트에서는 정석 교수를 만나 이러한 이야기를 나눠볼 예정이다. 집에 얽매이지 않고 주체적이고도 행복한 삶을 나는 살 수 있을 것인가? 그에게서 약간의 해답을 얻을 수 있기를 기대해본다.
북콘서트 시민기획단 나침반 ⓒ수원시평생학습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