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읽는 화요일, 도요새책방 읽기모임 활동기
초등학생 아들이 보는 만화 가운데 <동굴에서 살아남기>란 시리즈가 있다. 과학 학습만화인데, 생존을 걸고 하는 탐험 이야기가 얼마나 재밌는지, 시종일관 낄낄댄다. 생존기라면 나도 할 이야기가 있다. 일 년 가까이 참여하고 있는 두 개의 ‘읽기모임’ 얘기다. 학습관 ‘도요새책방’에는 요일별로 ‘읽기모임’이 열 개 가까이 열린다. 시집부터 여성학 책까지, 각 모임에서 읽는 책들은 그야말로 다종다양하다. 화요일에는 ‘글 항아리’와 ‘동화 읽는 어른’ 두 모임이 격주로 열린다. ‘글 항아리’는 문학과 인문학 책을 ‘동화 읽는 어른’은 그림책과 동화, 동시 등 어린이 문학을 주로 읽는다. 모임원 연령대는 어림잡아 평균 50세, 성별은 예상대로 여자~ 여자~ 여자, 그리고 단 한 명의 ‘청일점’ 글 항아리 리장님이 있다. 사는 곳은 수원과 용인 언저리며 관심사는 글쓰기, 민주 시민 되기, 갱년기 등이다.
40대인 내가 젊다고?
처음 ‘읽기 모임’에 갔을 때, 내가 가장 많이 들은 얘기는 ‘젊은 사람’이었다. ‘읽기모임’ 밖에서 나는 결코 젊은 축에 들지 않았다. 아이들 학부모 모임에서는 왕언니는 못 돼도 언제나 언니 소리를 들었고, 십 년도 더 된 일이지만, 패키지로 간 신혼여행에서 우리 부부는 최고령이었다. 풋풋한 신혼부부들 사이에서 부러움 대신 어려움을 샀다. 나는 불혹의 나이니 어쩌니 하며 주름 꽤 잡아 봤지만, ‘읽기모임’에서 나는 그저 ‘젊은 사람’이었다. 나보다 언니들을 만나니 푸근한 마음이 들었다. 내가 젊어서가 아니라 미래의 나, 미래의 고민을 미리 만날 수 있어서였다. ‘읽기모임’에서 내가 살아남은 첫 번째 이유는, 책보다도 책을 빌미로 나누는 인생 이야기가 너무 재밌어서다. 자다가도 모임에서 나눈 얘기가 떠올라 혼자 웃다가, 실없는 사람이 되곤 한다.
함께 읽는 즐거움, 함께 있는 즐거움
인생 이야기가 아무리 재밌어도, 모임에서 함께 읽는 책은 웬만해선 다 읽었다. 물론 올 초에 ‘글 항아리’에서 장편소설 <토지> 읽기를 했을 때는, 도저히 진도를 따라가지 못해 백기를 들었지만, 그밖에는 모임을 전후로 다 읽으려고 노력했다. <전태일 평전> <황금 물고기> <위건 부두로 가는 길> <사피엔스> <<빌뱅이 언덕> <미스 럼피우스> <안데르센 동화집> <봉주르 뚜르> 등 두 개의 읽기모임을 통해, 매달 두세 권은 꼬박꼬박 읽은 샘이다. ‘읽기모임’에서 나는 처음으로 '함께 읽기'의 즐거움을 깨달았다. 같은 책 다른 느낌을 확인할 때, 짜릿했다. 사람은 얼마나 저마다 다른지, 천편일률 온라인 서평에 다른 이의 감상을 염탐하던 때와는 다르다. 때로는 책을 외롭게 읽을 필요도 있지만, 지금은 함께 읽어서 좋다. 책과 책을 쓴 사람과 책을 읽은 사람이 삼단콤보로 나에게 오는 것이 ‘읽기모임’이다. ‘읽기모임’에서 내가 살아남은 두 번째 이유는, 함께 읽는 즐거움을 맛봤기 때문이다.
살아남기 위해 살지 않아도 된다
내가 ‘읽기모임’에서 살아남은 세 번째 이유는, 살아남기 위해 살지 않아도 됐기 때문이다. 학교나 직장에서 나는 살아남기 위해 경쟁하고 살아남기 위해 나를 숨겼다. 누구보다 많은 양의 공부와 일을 기계처럼 소화했다. 그러지 못한 친구와 동료들은 내 곁을 떠났고, 나는 그들을 ‘패배자’라 부르고 싶어 했다. 지금은 다르다. 당시에 아등바등하던 내가 친구나 동료들은 꽤 우스워보였을 거란 걸 이제는 안다. 살아남기 위해 살지 않아도 된다. 두 아이를 키우고 글쓰기를 좋아하며 수전증이 있고, 무대 앞에 서면 벌벌 떠는 나를 더는 숨기지 않아도 된다. ‘읽기모임’에서는 있는 그대로의 나를 얘기할 수 있다. ‘경쟁’과 ‘비교’ 대신에 ‘공존’과 ‘성찰’을 중요하게 여기는 삶, ‘읽기모임’을 하며, 매일 나는 그런 삶을 꿈꾸고 익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