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하승수님 강연 중 ⓒ수원시평생학습관
[북콘서트] 하승수(녹색당 前공동운영위원장)의 강연을 마치고
10월의 어느 멋진 날, 행복과 정치의 상관관계에 대해 논하다.
나는 누구, 여긴 어디?
종이테이프를 붙이고, 자르고, 그 위에 다시 투명 테이프를 붙이고. 손들이 바쁘게 움직인다. 복사기는 바쁘게 돌아가고, 갓 구워진 빵처럼 따끈따끈한 복사물이 한 아름 전달된다. 1시간이면 끝날 것 같던 작업이 여러 손들을 거치고도 아직이다. 어제 책상을 배열해 놓지 않았더라면 집에 잠깐 들릴 짬조차 어려웠겠지. 집에 먹을 게 없는데, 마트를 들려야 하나? 벌써 3시가 다 되었다. 그냥 집으로 가야겠다. 때마침 아이에게서 전화가 걸려온다. "엄마, 언제와요?" "지금 가고 있어. 뭐 먹고 싶은 거 있니?" "샌드위치." 집으로 가는 길에 빵가게에 들러 샌드위치와 작은 케잌 하나를 산다. 오늘은 일 년에 한 번 있는 남편의 생일이다. 미역국도 못 끓여 줬는데, 저녁도 같이 못 먹게 생겼다. 지난여름부터 내내 준비해온 가을학기 북콘서트 첫날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뭐 대단한 일을 한다고..." 미안하지만 이번 생일날엔 같이 밥 못먹겠다 그랬더니 남편이 그런다. 그래, 뭐 대단한 일을 한다고. 아이고, 남편이고 다 내팽개치고, 난 지금 무얼 하고 있나?
▲북콘서트 기획단 "나침반"에서 사전 준비를 하고 있다. ⓒ수원시평생학습관
학교를 마치고 가방도 집에 가져다 놓지 않고 놀고 있는 아이를 불러 라면을 끓여주고, 큰 아이 먹을 김밥 한 줄을 말아놓고 다시 학습관으로 왔다. 5분만 기다리면 아이 얼굴을 보고 말 한마디 건네주고 올 수 있는데, 마음이 자꾸만 조급해 진다. 그냥 가야겠다. 차가 막힌다. 5분이라도 먼저 나오길 잘했구나. 미안하기도 하고 서글펐던 마음이 다급한 마음으로 바뀌어있다. 1층 도요새책방에서 기타 선율에 맞춰 조용한 노랫소리가 흘러나온다. 마음이 조금은 안정된다. 서둘러 영상강의실로 향했다. 아직 멤버들이 다 모이진 않았다. 내가 빨리 온 것도 아닌데. 걱정이 앞선다. 그렇게 자주 모이고도 아직 일이 다 준비되지 않았다. 첫 번째 손님이 입장했다. 혼자라서 어색해 할까봐 괜히 말을 걸어본다. 분위기 있는 음악이 흐른다. 어색했던 공기가 조금은 부드러워진다. 손님들이 하나 둘 모여든다. 그렇게 우리들의 북콘서트는 시작되었다.
▲누구나 기타 향기의 오프닝 공연. 북콘서트 분위기가 화사해진다. ⓒ수원시평생학습관
지금 여기, 사람답기 위해
북콘서트 기획단 단장님의 재치있는 멘트가 손님들을 웃게 한다. 사람들로 꽉 들어찬 공간이 화기애애하다. "누구나 기타 향기"팀의 기타 선율에 담긴 따뜻한 목소리가 분위기를 고조시킨다. "10월의 어느 멋진 날에~" 그래, 10월의 어느 멋진 불타는 금요일 밤에 난 가족이 아닌 다른 이들과 지금 여기, 사람답기 위해 이 자리에 있다.
하승수 님의 강연은 행복이라는 화두로 시작되었다. 그는 변호사, 회계사, 대학교수 등 다양한 직업군을 거쳐 지금은 우리나라의 선거제도 개혁을 위해 시민단체를 조직하고 시민들의 여론을 형성하는 일을 하고 있다. 이 일이 마무리되면 귀촌하여 흙을 밟으며 사는 삶을 계획하고 있단다.
그가 가졌던 직업들 중에서 그는 대학교수였을 때가 제일 좋았다고 했다. "나는 행복한데, 그럼 내가 가르치는 학생들은 행복할까?" 어떤 학생은 졸업을 하고 공무원 시험을 준비 중이었는데, 공부는 너무 힘들고 앞은 보이지도 않는다고, 사는 게 너무 힘들다고 울면서 전화를 했다고 한다. 또 다른 학생은 졸업장을 따려고 학교를 다닌다고, 어차피 졸업을 해도 농사를 지을 것이기 때문에 학교에서 하는 공부 자체에는 별로 관심이 없다며, 현재도 농사를 짓고 있는 그 학생은 농번기에는 비 오는 날이 아니면 수업을 들을 수 없다고, F학점을 주시면 재수강을 하겠다고 했단다. 그런데 그 학생이 제일 행복해 보이더란다. 그 당시 민사소송법을 가르치고 있었던 그는 자신이 가르치던 학문이 학생들에게 얼마나 유용한가에 대해 고민하게 된다. 그리고 학교를 그만둔다.
▲강연 중인 하승수 님. "행복"에 대한 이야기로 문을 열었다. ⓒ수원시평생학습관
행복과 정치의 상관관계
우리는 우리의 할아버지, 할머니보다 훨씬 더 부유하지만 그렇다고 우리가 더 행복한 것일까? 실질적으로 많은 수치들이 소득증가에 비례하여 행복지수도 그만큼 높아진다는 것을 보여주지는 않는다. 그럼 어떻게 하면 행복해질까? 얼마 전 지진으로 인해 전국이 불안에 휩싸였었다. 경주 사람들은 물론이고 누구라도 내가 살고 있는 이 땅이 안전한가에 대한 의문을 지울 수 없다. 안전하지 않은 사회에서 개개인은 행복할 수 있을까? 물론, 아니다. 덴마크, 스웨덴, 네덜란드 등 이 나라들은 비교적 자연 여건이 열악했지만 그럼에도 비교적 행복한 사회를 형성하고 있다고 평가 받고 있다. 이들의 행복 비결은 정치에 있다. 덴마크의 투표율은 80%가 넘는다고 한다. 다당제를 통해 한 정당이 독주하는 것을 막고 작은 정당들이 서로 연합하여 좋은 정책들이 채택될 수 있도록 했다. 100여년간 이루어진 이러한 노력들은 정치적 투명성을 보장했고 실직이나 노후에 대한 국민들의 불안을 정치 시스템으로 덜어주었다. 그러니 덴마크 국민들의 투표율이 높을 수밖에.
결국, 개인의 행복은 정치가 뒷받침 되어야 하고 정치에서 변화는 선거제도로부터 나온다. 하승수 님은 이러한 선거제도의 변화를 위해 시민들의 여론을 형성하는 일이 무엇보다 선행되어야 함을 강조했다. 오늘 북콘서트에 참석한 시민들도 이에 많이 공감하는 듯 했다.
오늘 하루, 나는 행복했던가? 아내로서 엄마로서 내 자리를 제대로 지키지 못한 죄책감이 몰려든다. 오늘 하루, 그리고 앞으로 여러 날 동안 나는 내 가족으로부터 내가 하는 일에 대해 계속 공감 받지 못할 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많은 가족들의 행복이, 그리고 내 가족의 행복이 이 작은 일에서 시작될 수 있음을 아니 이미 시작되었기를 북콘서트 멤버들과 함께 소망해본다.
▲하승수 님(가운데)과 북콘서트 기획단 멤버, 수원시평생학습관 담당 연구원(맨 우측) ⓒ수원시평생학습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