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리 얻어지는 것들을 통해서는 알 수 없었던
느린 삶이 주는 소중한 경험들을 할 수 있었던 시간
TV속 각종 건강관련 프로그램에서 천연발효 식초가 건강과 다이어트에 도움이 된다는 정보뿐만 아니라 식초를 활용한 다양한 살림비법들이 유난히 많이 소개되는 요즘이다. 하지만 내게 식초는 단지 요리할 때 조금씩 쓰이는 조미료 정도였다. 그런 내가 <더느린삶 식초교실> 강좌에 ‘식초도 집에서 만들어?’하는 호기심과 동생의 다이어트를 위한 파인애플 식초를 만들어 주겠다는 목표로 등록을 하게 되었다.
식초의 역사와 막걸리 만들기 실습을 시작으로 매시간 이론과 실습이 반반씩 진행 되었다. 첫 시간 현미로 고두밥을 쪄 막걸리를 담그고 그 막걸리가 발효가 되면 식초가 된다는 예상하지 못했던 식초의 근원이 신기하기도 하고 과일과 곡물을 이용한 다양한 종류의 식초와 활용법을 통해 식초에 대한 이해를 넓힐 수 있었다.
정규 수업은 총 4회였지만 실습은 생활 속에서도 계속 되었다. 첫 시간에 식초의 씨앗이 되는 종초에 막걸리 한 병씩을 섞은 촛단지를 하나씩 받아와 집에서 직접 발효를 해 나의 식초를 직접 만들어 보는 것이었다. 겉으로 보기에는 그냥 막걸리 한 병이 들어있는 작은 단지를 마치 보물단지처럼 조심스럽게 집에 들고가 부엌 한편 그늘지고 통풍이 잘되는 명당자리를 찾아 모셔둔 후 나의 일상에는 작은 변화가 일어 났다. 그 작은 단지 안에서 어떤 일이 생기는지가 너무나 궁금하고 신기해 아침 저녁으로 촛단지를 살피는 게 일상이 되었다. 초막은 생겼는지, 어떤 냄새가 나는지, 정말 잘 되고 있는 것인지. 수도 없이 병을 들여다 보고 덮어 놓은 면포를 열어 보기를 수십 번, 아침에 일어나면 촛단지에 인사 먼저 하고 시작되는 나의 일상에 수업은 일주일에 하루였지만 식초 만들기는 어느새 내 일상의 일부로 깊숙이 자리잡게 되었다.
둘째 주에는, 식초를 만들기 위해 첫 시간에 담근 막걸리를 받아와 집에 모셔둔 종초와 합쳐 주었다. 새 단지 안에서 보글보글 작은 소리를 내며 발효가 되는 과정이 너무나 신기해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쳐다 보고 있기도 했다. 발효가 되어가는 과정을 직접 보는 신기함에 나도 모르게 “이 아이들, 살아 있구나!”, “잘해보자~”라는 말이 저절로 나온다. 아직까지 방부제 가득한 죽어있는 것들만 먹어오다 살아있는 신기한 식초 단지를 보니 보는 것만으로도 건강해 지는 느낌이고, 단순한 식초가 아니라 내 새끼들이라는 생각까지 든다.
동네 앞 슈퍼에 가서 한 병에 몇 천원이면 바로 가져 올 수 있는 게 식초 한 병인데 몇 주에 걸쳐 집안 가득히 냄새 풍기고 초파리까지 꼬여가며 기다려야 겨우 맛볼 수 있는 천연발효 식초, 그나마도 종초가 없으면 몇 달도 걸리는 과정에 지인 하나는 “그냥 사먹어~”라고 한다.
하지만 종초를 부어 놓고 좋은 식초가 되기를 기다리는 과정의 설렘, 같은 종초를 받았지만 수강생마다 각기 다른 맛의 식초를 얻게 되는 신기한 과정을 겪으며 이 한 병의 식초를 통해 기다려서 얻는 것의 소중한 가치를 깨닫게 된다. ‘더 느린 삶’이란 주제처럼 조금 느리게 얻어지는 것이지만 빨리 얻어지는 것들의 과정에선 얻을 수 없었던 느린 삶이 주는 소중한 경험들을 체험할 수 있는 시간이었다. 교육 과정은 끝났지만 교육에서 얻은 두 단지의 식초를 가지고 난 지금 너무 많은 계획을 세우고 있다. 더 많은 종초를 만들어 주위와 나누는 생활, 새콤달콤한 식초 한 잔을 통해 건강해지는 생활이 기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