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독오독? 글자를 잘 못 읽는 사람들이냐고요?”
<독서토론 읽기모임 - 오독오독>
“아무리 생각해도 말예요. 어떻게 나한테 책을 주냐고, 그니까 어떻게 나 같은 놈이 책을 볼 거라는 생각을 하냐고요. 응?”
느티나무도서관 박영숙 관장이 쓴 『꿈꿀 권리』 프롤로그 첫 장의 한 부분이다. ‘나 같은 놈’이란 표현, 참 많은 걸 담고 있다. 명확하게 이러한 사람이라고 정의내릴 수는 없지만 대충은 어떠한 사람이란 걸 짐작하게 해준다. 나 또한 그랬다. ‘나 같은 사람이 어떻게’. 언뜻 예의를 차린 말로 언제나 언저리쯤에서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며 나서지 않았다. 일정 영역 안으로 들어가면 발가 벗겨진 모습이 될까 두려워 정해진 거리만큼만 움직였다. 모난 돌이 되어 정 맞는 일은 피하고 싶어 조용히 있는 사람으로 적당히 살아가려 했다.
출발점은 독서토론지도자 양성과정
‘나 같은 사람?’이 ‘나 다운 사람?’이 되려면 어떤 사람이 되어야 할까? 수많은 질문을 하던 시간들이었다. 혼자 책을 읽기도 했고, 해답을 줄만한 기관을 찾아 공부도 했지만 딱히 ‘이것이다’란 정의가 내려지지 않아 ‘나’를 찾지 못하는 시간들이 이어졌다. 하루살이의 밥벌이에서 벗어나 자신만을 위한 시간이 필요했다. 어느 새벽녘, 눈이 떠질 때 잠과 깸의 고민을 하던 순간에 깨어남을 택하며 얻어진 여유와 뿌듯함이 어깨를 두드려주는 힘이 될 때가 있다. 내겐 독서토론과정이 그랬다. 여전히 어른아이의 곁가지에서 어른으로 가는 성장통을 벗어나지 못해 오리무중일 때가 많지만 지금 막연함만 있지는 않다.
2015년 9월 독서토론 지도자과정이 평생학습관에서 개설되었을 때, 누구나 꿈꾸지만 이루지 못하고 사는 모습이 책을 읽으며 나를 찾는 게 아닐까 생각하며, 꿈으로만 있는 길을 ‘도전’하고 싶다는 소망으로 3개월의 교육기간을 보냈다. 한 권의 책을 읽으면서 그 안에 무수히 등장하는 인물들과 그들의 삶에서 자신을 들여다보고, 다른 이들의 입을 통해 그들의 삶도 들여다보는 시간들이 이어지며 얹혔던 체증이 뚫리듯 시원해졌다. 투명하지 않았던 인물의 선택을 들여다보면 어쩔 수 없는 상황이 그런 선택을 할 수밖에 없게 만듦도 보였다. 현실의 굴레는 인간을 인간다움과 인간답지 않음으로 나눌 수 있고, 개인의 의지로 선택을 논하기엔 사회구조적인 문제가 더 컸던 경우를 보면서 왜 답답했는지 명확해졌다. 짧은 시간이 아쉬워 심화과정이든, 후속모임이든 만들어지면 좋겠다는 생각들이 모여 바로 읽기모임이 만들어졌다. 교육기간 중에는 주어지는 과제와 배움이 바빠 서로를 탐색할 시간도 없이 지났기에 진정한 알아짐은 후속 읽기 모임에서나 가능했다.
읽기모임 이름은 오독오독
각각의 분야에 맞는 독서를 위해 문학과 비문학을 적절히 섞어 1년 치의 목록을 선정하고, 2주에 한 번, 논제를 준비하는 발제자를 뽑고 나니 모임의 이름이 필요해졌다. 다양한 이름들 중에서 ‘낮에 만나 책을 읽는다, 책을 오독오독 씹어 먹는다’는 중의적인 의미가 담긴‘오독오독’으로 정했다. ‘오독오독’이란 단어가 언뜻 들으면 ‘책을 잘 못 읽는다’는 의미로 오해를 사는 경우도 있는 걸 보면 인상적인 이름으로 역할은 충분해 보인다.
함께 읽었던, 읽는, 읽을 책들
『행복한 청소부』를 읽으며 겉모습이 사람들에게 얼마나 많은 편견과 고정관념을 갖게 하는지 알게 되었다는 의견과 직업의 차별을 강화할 수도 있겠다는 의견이 상충하기도 했다. 대학교수직을 거절한 청소부의 행동을 옹호하는 입장도 있고, 도전하지 않은 아쉬움을 토로하는 입장도 있었다. 그림책은 아이들 책이라고만 생각했는데 어른이 되어 보는 그림책의 다른 맛에 빠져들었다는 의견들이 오고가며 한 사람의 행동이 어떤 사고의 변화를 가져오는지 제대로 느꼈던 시간이다.
달을 향해 손을 뻗다 발 밑의 6펜스를 놓친다는『달과 6펜스』가 가장 치열했다. 찰스 스트릭랜드의 열정적인 예술혼 앞에서 평범한 인물들이 벌이는 이중성과 인간내면의 본능, 등장인물 하나하나 이해가지 않는 이가 없으니 누구 편을 들어야 할지 한참이나 이야기가 오고갔다. 세계대전이란 시대현실을 반영하지 않아 비판을 받았다는 작품에 대한 평가에서 지식인인 작가가 현실을 외면하면 안 된다는 의견과 문학의 가치는 인간의 내면만으로도 공감할 수 있다는 의견으로 열띤 토론이 이어졌다.
사회학자 노명우의 『세상물정의 사회학』은 사회학적 지식과 경험을 바탕으로 평범한 사람들의 삶과 일상의 문제를 다루어 사회의 구석구석을 들여다보며 새롭게 이해하는 시간이었다. 우울한 현실의 고통을 직시하며 행동으로 옮겨야 한다는 생각과 사회전반의 문제를 다루어 좀 더 사회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는 의견이 나왔다. 반면 해결책이 제시되지 않은 채로 다양한 주제를 담아 깊이감이 부족해 보인다는 전문가적인 지적도 나왔다. 한 권의 책을 읽으며 토론하는 중에 ‘신문 읽기의 혁명, 뉴스의 시대, 싸가지 없는 진보, 모두스 비벤디, 품위 있는 사회, 미움 받을 용기, 사회학의 쓸모’ 등의 책들이 소개됐다. 사회문제는 정치색이 짙은 남자들의 분야라고 생각했던 편견이 깨지는 순간이었다. 낯선 책들 제목만큼이나 토론 후 이어진 소감도 환상적이다.
“내가 뭘 할 수 있을까 하는 무력감에 빠졌으나 생각을 공유하며 나만 느끼는 문제가 아님을 알았다, 책모임이 이래서 필요하다. 품격 있는 사회로 가려면 과감하게 다른 의견을 들을 수 있어야 한다. 콜드 팩트를 대면할 용기가 필요하며, 아이들이 좋은 세상에 살게 된다면 나도 뭔가 했다고 당당하게 말할 수 있도록 하겠다. 무지가 무기력과 무능을 불러온다는 말과 나 하나쯤 하며 넘겼던 문제에 대해 나 하나라도 하겠다는 의식을 갖겠다.”
노명우 저자의 북콘서트가 ‘불안의 시대를 살아가는 방법’이란 주제 하에 수원평생학습관에서 지난 3월에 열렸다. ‘오독오독’ 읽기 모임 구성원들이 주축이 된 시민기획단 ‘나침반’ 회원들이 마련한 북콘서트가 2월 강양구 기자, 3월 노명우 교수를 시작으로, 4월 박영숙 느티나무도서관 관장, 5월 김중미 작가 등이 초빙되어 열릴 예정이다.
『기획된 가족』을 읽고 엄마와 여자로 살아가는 우리들의 현주소를 대면하면서 여자만이 느끼는 울분을 토하기도 했다. 자신의 문제를 넘어서 딸이 여자의 꿈과 엄마의 의무에서 고민하고 있다면 어떻게 할 것인지를 묻는 논제에 대해 열띤 토론이 오갔다. 자식을 위해 희생했다고 알아주지 않을 것이며, 꿈을 위해 살아갈 때 살아있는 느낌이 드니 엄마로만 머물지 말라, 지금은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아이를 낳을 것인지가 문제다, 아이를 키울 수 있는 환경도 만들어놓지 않은 정부의 문제다, 돈 몇 푼 준다고 해결되는 것이 아니다, 네덜란드의 경우 아이를 낳는 것에 부담을 느끼지 않고 직장에서도 아이를 키울 수 있게 배려한다, 개인의 선택으로 만드는 정부의 무능을 개인의 책임으로 만드는 현실이 아프다는 등의 다양한 의견이 나왔다. 책에서 이해되지 않는 부분이 있다는 질문에 함께 책을 보며 각자의 의견을 보태다보니 미처 정리되지 않던 부분이 해결이 되는 놀라운 일도 생긴다. 이게 함께 읽으며 토론하는 맛이다.
『허삼관 매혈기』를 읽으면서는 아버지의 모습을 이해하게 되었다는 의견이 많았다. 가족을 위해 살기 위해서 죽는다는 말이 어떤 말인지, 부모가 되어보니 부모마음을 알게 되었다는 말에 한 마음이 되었다. 담담하게 서평을 읽어가는 이와 달리 듣는 이들의 얼굴은 점점 작은 우주가 되는 시간이기도 했다.
『동물농장』, 『그리스인 조르바』를 읽으면서는 속 깊은 이야기들이 오가며 분노하는 감정만이 아니라 행동하는 실천가의 모습이 필요함도 알게 되었다. 시대를 떠나 여전히 현재진행형의 문제들이지만 깨어있는 의식이 모이면 조금씩 변화되고 발전한다는 결론에 우울하지만은 않다. 조르바를 보면서 자유에 대한 정의가 생기고, 다른 이의 시선을 의식하며 행동할 필요가 없음을 알았지만 그리 하지 못한다. 질문에 맞는 답을 원하는 사회가 되다보니 다양성을 추구하지도 못하고, 틀 안의 자유만 누리고 있다. 조르바를 만나면서 인생이 변했다는 말에 모두의 마음이 담긴 응원이 박수가 이어졌다.
『자기결정』, 『꿈꿀 권리』는 닮은 듯 다르다. 내 삶의 주인이 되어야 잘 살 수 있다는 저자의 생각이 모호한 철학 용어들로 넘쳐나 얇은 두께에 비해 상당한 에너지를 요했다. 자기 결정적 삶은 존엄성과 행복의 구체적 조건이라는 말은 알겠으나 현실에서 접목하기엔 담겨있는 뜻이 너무 컸다. 구체적이지 않은 표현에 다들 난감해 했지만 두고두고 되새김할 책이란 점은 모두 인정했다. 4월 27일에 있을 북콘서트의 주인공 박영숙 관장의 책은 별점 5점이 다수 나왔다. 일방적인 지지를 받는 책은 토론 책으론 재미가 없으며 논제 뽑기도 쉽지 않다는 불문율이 있다. 저자의 무조건적인 헌신에 거부하는 마음도 들었지만 몇 번이고 읽다보니 마을에서 문화운동이 시작되며 부딪치는 경험들 속에서 저자의 생각을 정확히 이해하게 되었다는 의견이 큰 공감을 얻었다. 세상을 바꾸는 힘이 물음표이고, 꿈꿀 권리가 있다는 제목이 마음에 들었다는 이도 있었다. 꿈의 크기를 누가 정할 수 있겠냐는 의미로 제목이 정해졌다는 설명이 이어진다. 쉬운 문체로 술술 넘어가는 표현이 마음에 들었다는 솔직함에 긍정의 웃음들이 퍼지는 도요새책방 풍경이다.
앞으로 읽고 토론할 책들은 『유혹하는 글쓰기』, 『별도 없는 한밤에』, 『물에 쓴 글씨』, 『소년이 온다』, 『채식주의자』, 『노르웨이 숲』,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얘기』, 『멋진 신세계』, 『루됭의 악마』, 『생의 수레바퀴』, 『인생수업』 등이다. 작가의 깊이를 알기 위해서는 한 작가의 책을 적어도 두어 권은 읽어야 그 사람이 추구하는 가치와 인생을 알 수 있다는 의견에 따라 앞으로 남은 독서는 작가 별로 두 작품을 읽을 예정이다.
앞으로의 바람
책을 매개로 사람을 만난다. 인생을 만난다. 그들의 꿈을 만난다. 나를 인정하고 공감해주는 주인공의 이야기를 보면서 아프지 않다. 지지해주는 이를 만났을 때 할 수 있는 힘이 생겼다. 정체성의 혼란에서 성장할 수 있음도 책과 함께 하는 사람을 만났을 때였다. 세상과 소통하는 느낌을 받음도 함께 할 때였다. 개인의 문제로 비춰 능력의 유무로 인한 상실감이 버거웠으나 사회적 문제였음을 알았을 때 살 수 있었다. 생각이 다른 이를 만났을 때 유연해지는 사고를 느꼈다.
책은 결국 사람과의 만남이다. 호기심을 채워주고, 사람과 어울려 생각을 나누며 세상으로 한걸음 내딛는 발자국이다. 혼자 읽기의 매력도 클 것이나 함께 읽고 이야기를 나누면 보이지 않던 내면의 바람이 일어남이 보인다. 나로부터의 작은 변화가 세상을 바꾸는 바람이 될 수 있음을 함께 읽기는 보여준다. 개인의 의지가 약해질 때 함께 하는 이들의 공유와 다양한 장르의 독서는 든든한 바람막이가 된다.
진정으로 자기를 찾는 과정에 손잡고 가는 이들의 응원이 큰 보탬이 된다는 걸 이미 경험했지만 정체성을 잃지 않도록 방향을 잡고 가야 할 숙제가 남았다. 혼자 해결할 수 없을 땐 함께 의논하면 된다. 같이 읽고 같이 말하고 같이 나누면 쉬워진다. 글을 읽고 나르는 사람, 말을 하고 나르는 사람, 글을 지면에 나르는 사람까지 이어지는 발전의 단계를 밟고 싶은 작은 소망 하나를 더하면 완전체의 읽기모임이 되지 않을까.
책을 건넨다는 건 존엄함에 말을 거는 일이었다. 지금 그가 어떤 모습이든 상관없이 언제든 그 책을 펼쳐 읽을 ‘수도’ 있고, 그 속에 담긴 메시지가 가슴을 뛰게 만들 수 있다는 믿음, 그리고 그의 잠재력과 배움과 꿈에 응원을 건네는 일이었다.
- 『꿈꿀 권리』 프롤로그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