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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하작가와의 만남, 문학을 읽어야 하는 이유는?

작성자
김소라
작성일
2016.05.11
조회수
5873/1



<2월 명사특강> "김영하 작가에게 듣는 삶, 문학, 글쓰기" 후기
지금 문학을 읽어야 하는 이유


“제 인생의 시적인 순간 중 하나입니다. 바로 대학 시절 정현종 시인의 시창작론 수업을 들었을 때죠. 천둥번개 치는 날, 모든 학생들이 불을 끄고 세상의 소리를 들었습니다.”
 
2016년 2월 16일 저녁 7시 수원시평생학습관 강당에는 김영하 작가의 강연을 듣기 위해 사람들이 모였다. 그의 이야기를 듣기 위해... 지금 이 시대 문학을 전공하지 않았음에도 문학계에 가장 영향력을 미치는 작가 한 명을 손꼽으라고 하면 김영하를 들 수 있다. 2000년대 초반 김영하 작가의 『퀴즈쇼』를 읽고 나는 속으로 그의 팬이 되리라 다짐했다.


강연에서 김영하 작가는 문학을 읽어야 하는 이유, 그리고 소설을 써야 하는 당위성을 거침없이 말했다. 주제가 명확한 책 혹은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바가 뚜렷한 책은 오히려 좋지 않다는 것, 그냥 작가는 재미난 이야기 하나를 들려줄 뿐이며, 질문을 던지고 생각하는 일은 독자의 몫이라고 한다. 소설에서 주제와 답을 찾아야만 한다고 강박을 느끼는 사람들에게 필요한 이야기다.
 
수원에서의 강의가 뜻깊은 이유는 김영하 작가가 수원과의 인연이 깊기 때문이라고 했다. 아버지가 매탄동 외환은행에서 근무하시고, 자신은 51사단의 헌병대 수사과에서 1년 반 방위병으로 근무했고, 심지어 매탄동 주공아파트에서 살았다고. 군대 내의 수많은 범죄를 기록하는 수사과에서의 조서 작성이 특별히 소설쓰기에 도움이 된 점도 말한다.
 
“군대 내의 많은 범죄를 단 4가지 이유로 분류 짓더라구요. 애인 변심, 신변비관, 가정불화, 복무염증. 어떻게 인간의 행동을 단 4가지로 분류하여 설명할 수 있을까요? 단순히 밥이 싫어서, 군복이 싫어서, 어쩌다 보니... 정말 말도 안되는 많은 이유들로 군대 내에서 범죄나 살인사건이 일어나요.”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말도 안되는 이유로 살인자 혹은 범죄자가 되는지 군대에서 접했다고 한다. 예를 들어 한 사건을 이야기했는데 흥미로왔다. 김경호라는 하사관이 귀대시간을 놓쳐서 수원 남문에서 술을 마시다 진짜 술집에서 자신과 이름이 똑같은 김경호라는 남자를 만났다고 한다. 그런데 같은 이름의 김경호는 전과 25범의 범죄자였던 것. 강도, 가정파괴범, 성폭행 등의 범죄를 저지른 사람이었다. 부대에 복귀를 하지 않고 김경호와 함께 범죄를 저지르다가 이후에 체포되었던 사건이다. 김경호가 김경호를 만나 함께 범죄를 저지른다는 소설속에서나 일어남직한 이야기가 현실이었다.
작가는 51사단에서 헌병대 수사과에서 수많은 범죄 조서를 쓰면서 이미 소설을 쓴 셈이다. 자신의 소설이 폭력적이고 성적 수위가 높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많지만 이미 현실에서는 더 ‘자극 센’ 일들이 빈번히 벌어진다. 말도 안되는 일들이 현실에 일어나기 때문이다.
작가는 이렇게 말하며 어둡고 부정적인 이야기를 하루종일 들으면서 지냈던 51사단의 기억이 자신에게 소설쓰기의 밑거름이 어떻게 되었는가 말했다. ‘조서를 조금 잘 쓰는 고학력 가방끈 긴 방위병’ 이 세계적인 소설가가 되는 과정이 어떻게 이루어진걸까. 수감자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썼던 조서가 이미 소설이었다고 한다. 음습한 과정이었지만 글쓰기의 기쁨을 맛보면서 주말이나 퇴근 후에는 소설을 썼고, 제대할 때 썼던 소설 한 편이 신춘문예 최종심까지 올랐다. 소설로 남의 이야기인 것처럼 글을 쓰면 힘든 일을 잘 견디게 된다고 한다.
 
“부대의 헌병대장이 수감자들의 일기를 모아서 책을 내자고 했어요. 헌병대장 자신의 진급에 유리할 것 같다는 논리로 말이죠. 그 때 수감자들이 글을 쓴 것을 보면 정말 잘 썼어요. 인간은 절박하고, 절실할 때만이 좋은 글이 나온다는 것을 그 때 알았습니다. 자신을 깊이 이해하지 못하던 사람들이 글을 쓰는 순간 자신을 이해하고 진지해집니다.”
 
글을 쓰면서 남의 이야기를 하지만 어쩌면 끊임없이 자신의 문제를 발견할 수 있다. 글을 쓰면 자신을 들여다보게 되고 스스로 뭘 하는지 알게 된다. 『자기결정』을 쓴 피터 비에리는 "결정을 하기 위해서는 내가 뭘 원하는지 알아야 한다"고 썼다. 그런데 아무리 조용히 혼자 사색해도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알기 힘들다고 한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하는가? 바로 ‘소설을 읽는 것’이다. 소설을 읽으면서 나와 비슷한 사람이 나오면서 그가 행동하고 사고할 때 내가 누군지 알아갈 수 있다. 소설읽기는 이처럼 자기발견의 첫걸음이다.
 
김영하의 소설에는 잔인한 살인자, 자살안내인, 폭주족, 연쇄살인범, 패륜아 등 사회적인 부적응자나 범죄자가 수시로 나온다. 성적인 수위가 높고, 폭력성도 짙다. 하지만 이야기 자체는 현실에서 벌어지는 일들의 단편일 뿐이다. 위험하고 날카롭고 어두운 세상 등 우리가 직면하고 싶지 않은 면들을 정직하게 드러낼 때 좋은 글이 될 수 있다고 강조한다.
 
“10살 때 연탄가스 중독으로 죽을 뻔한 경험이 있습니다. 군인 아버지를 따라 전국을 옮겨 다니며 살았고, 초등학교 6년동안 매 학년 다른 도시에서 다른 학교를 다닐 정도였어요. 언제나 떠나고 잊고 잊혀지는 일들이 제 인생에서 끊임없이 일어났어요. 그것이 소설의 모티브가 된 셈이죠.”
 
작가는 이렇게 말하며 글쓰기에 대한 이유와 절실함을 말하였다. 1시간의 강의와 함께 질의응답이 이어졌다. 김영하 작가가 오랜 해외생활과 부산에서의 생활을 청산하고, 서울 연희동으로 이사와서 사회적인 관계를 맺기 시작한 사건에 관한 질문이었다.
 
“연희동에 수십년간 개발되지 않았던 개나리언덕이라는 1500평의 숲이 사라질 위기에 놓인 거예요. 제가 이사온 날부터 포크레인으로 파헤치고, 저희 집 담장 옆의 살구나무가 쓰러졌어요. 이전까지 세상과 담쌓고 살아온 저는 사람들과 사회와 개입하기 싫었습니다. 하지만 억울한 일을 당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다 보니, 누구도 약자가 될 수 있다는 생각 그리고 지금껏 나는 운이 좋았구나란 생각이 들었어요. 약자가 피해자인데 세상에서는 낙인을 찍어요. 약자가 되어보지 않고서는 모릅니다. 제가 연희동 주민들과 세상에 목소리를 내고, 언론화되고, 이슈가 되면서 사실상 개발은 무산되었죠. 그리고 이 동네는 살아있는 마을 공동체로 거듭나게 되는 사건이었어요.”
 
김영하는 ‘이 일이 나에게 왔구나’ 라고 말했다. 어떤 일이든 나에게 다가온 일을 문제로 여기지 않는 태도다. 이후 작가는 인간만이 할 수 있는 일에 희망이 있다고 말하면서 로봇과 경쟁해야 하는 시대에 어떻게 인간으로 살 수 있는가를 말했다. 바로 문학이나 철학, 예술이 필요한 이유다. “글을 쓸 때 글을 쓸 수 있습니다” 라고 말하면서 글쓰기는 용기를 내어야 하는 일이라고 했다. 짧고 강렬한 문학적인 메시지로 강의를 마무리하면서 시민들에게 영감을 주었던 강연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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