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토론 진행자 과정>
?에서 !로~ 무엇을 어떻게 읽을 것인가
최악의 독자는 되지 말라는 니체
"책을 읽은 뒤 최악의 독자가 되지 않도록 하라. 최악의 독자라는 것은 약탈을 일삼는 도적과 같다. 결국 그들은 무엇인가 값나가는 것은 없는지 혈안이 되어 책의 이곳저곳을 적당히 훑다가 이윽고 책 속에서 자기 상황에 맞는 것, 지금 자신이 써먹을 수 있는 것, 도움이 될법한 도구를 끄집어내어 훔친다. 그리고 그들이 훔친 것만을 마치 책의 모든 내용인 양 큰소리로 떠드는 것을 삼가지 않는다. 결국 그 책을 완전히 다른 것으로 만들어 버리는 것은 물론, 그 책 전체와 저자를 더럽힌다."
‘니체’의 말이다. 짧은 몇 구절을 읽어 내려가는데 부끄러움이 귓불을 지나 얼굴로 번진다. 과거의 니체가 현재의 내 앞에서 나를 빤히 바라보고 있다. 팔짱을 낀 채 나를 내려다보고 있다. 다른 누구를 위해서가 아니라 나를 두고 하는 말이었다고 한다. 그래, 나는 니체가 말하던 그 최악의 독자였다. 부끄럽다 말하면서도 최고의 독자가 될 가능성이 많아 보이지 않는다. 그의 말처럼 내 상황에 맞췄고, 내가 써먹을 수 있는 것을, 필요한 부분에 밑줄 긋고, 발췌하고 훔쳐서는 책의 이곳저곳을 인용하고, 필요에 따라 써먹고 그것이 어디에서 나왔는지조차 잊었다. 그 책을 다 읽고 이해했다는 착각도 했다.
그의 책 ‘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의 제목에 끌려 겉멋 든 여고생의 내가 몇 장 읽다 책을 덮은 기억이 난다. 아마도 다 읽었다 하면 어느 정도의 기억이 있을 텐데 어떤 내용인지 전혀 기억이 없는 걸 보면 다시 펼쳐 보지 않았음이 확실하다. 그리고는 분명 제목을 안다는 이유로 다 읽은 흉내를 냈을 것이다. 다 읽지도 않은 유명작가의 책들을, 이름만 대면 다 아는 제목의 근사한 포장지로 무지와 무식한 나를 들키지 않으려 철저히 봉했을 것이다. 양심의 가책으로 책을 많이 읽었다가 아닌 책을 좋아하는 사람으로 둔갑해 혹여나 보일 맨살이 두려워 독서토론과는 일정거리를 유지했을 것이다.
▲독서토론진행자과정 첫 수업
알을 깨는 연습
<독서토론 진행자 과정>이 수원시평생학습관에 개설이 되어 신청서 접수를 할 때만 해도 부담이 없었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신청하겠느냐, 나처럼 무늬만 책과 친한 사람들이 오겠지’ 하는 안일함에 신청서를 작성하고 선정되었다는 안내를 받으면서도 신청자가 별로 없다고 생각했다. 밥벌이에 필요해서 오는 나처럼 순수하지 않은 의도로 오는 사람들일 것이라 착각했다.
다행히 지금까지는 껍데기 모습으로 살아왔어도 괜찮았다. 누구도 내가 제대로 된 독서를 하지 않았다고, 최악의 독자였다고 뭐라 하지 않았다. 어제의 태양이 내일도 떠오르고, 세상이 달라짐 없이 잘 돌아가고 있다는 긍정의 언어가 서로를 밀쳐내지 않는 자석의 극처럼 달라붙어 있어 문제가 되지 않았다. 그런데 오늘 나를 옭아매던 껍데기가 부서지며 결코 들키지 않았던 문제의 맨살이 드러났다.
수업시간이 20여 분 남았음에도 교실이 사람들로 채워지는 걸 보면서 ‘아차!’ 했다. 책을 미리 읽으리란 생각에 검색한 도서관마다 ‘대출 중’이란 안내를 볼 때만 해도 ‘설마, 이곳에 수업 오는 사람들이 빌리진 않았겠지’ 했는데 그 설마가 진짜였음은 그들의 손에 들려진 ‘책으로 다시 살다’의 도서관 표시를 보고나서였다. 숙제는 아이들만 하는 것이란 검은 속삭임으로 미리 주어진 과제를 하지 않음에 대한 합리화가 깨지는 순간이었다.
▲1분 스피치로 자기소개를 해요
독서토론을 한 후 속이 허전했던 적은 없다
책을 다 읽은 선생님들이 실전 토론을 할 것이란 예고에 어느 정도의 오고가는 각본이 있으리란 예상과 달리 바로 토론이 이어진다. 미리 이야기가 되어 만들어진 토론모임이 아니다. 오늘 처음 이 자리에 와서 전체적인 소개도 없이 잠깐의 수업 후 책을 읽었다는 이유만으로 패널이 되어 수십 개의 눈들이 지켜보는 가운데에 앉은 것이다. 과제로 주어진 책을 읽은 후 별점과 그에 대한 소감이 이어지는데 눈 밑이 파르르 떨린다. 예상치 못한 답변들이 나온다.
그들의 공간은 불이 붙었다. 과제로 주어진 책에 대한 비평도 이어진다. 이 책을 통해 공감과 위로를 받고 다시 책을 읽어야 될 동기를 얻었다면 평이성과 지루함으로 별다른 감동이 없었다는 비평도 이어진다. 날카로운 자신만의 해석을 곁들일 때는 아하! 탄성이 새어나온다.
▲열띤 토론의 장
‘사이토 다카시’가 등장하고, ‘해피어’가 튀어오르고, ‘동양학 어떻게 할 것인가’가 올라오고, ‘그리스인 조르바’의 여행이 시작되자 사정없이 두더지 잡는 망치가 작동을 한다. 생소함과 낯설음이 한꺼번에 치고 들어온다. 들어본 적도 읽어본 적도 없는 책들이 내 눈 앞에서 둥둥 떠다닌다. 손에 잡아본 적 없는 그들을 향해 손을 뻗고 있는 나는 부끄러움에 연신 헛손질이다.
‘그리스인 조르바’를 읽으면서 화자가 바라본 ‘나’를 보게 되면서 자신에게 무수한 질문을 던지며 조르바처럼 살지는 못하더라도 자신이 좋아하는 걸 하면서 살아야겠다는 선생님, ‘나의 중심’을 찾게 되면서 의식의 눈을 뜨고, 잘못된 번역으로 인해 잃게 되는 많은 것들, 그 시대의 언어로 전달되지 못하는 번역의 문제점을 지적한 선생님, 미래를 위해 현재를 포기하고 열심히 사는 사람들에게 미래가 없어지면 어떻게 될 것인지를 생각하며 ‘현재’를 더 생각하게 되었다는 선생님.
구경꾼이 되어 한 발 떨어진 자리에서 책 한 권을 놓고 달리 해석하는 토론의 장을 보면서 책이 가진 힘, 독서가 주는 힘이 내게로 전달된다.
“함께 책을 읽고 토론을 하면 서로에게 거울이 된다. 혼자읽기가 충분히 된 후 함께 읽기를 하면 시야가 확장되어 좋다. 전체적인 걸 보면서 내가 놓쳤던 부분을 알게 된다. 다른 사람의 생각을 발판삼아 내 것으로 만들 수 있다. 읽기 전에 선입견이 생길 수도 있으니 충분히 자신이 주도적으로 심화독서를 한 후 함께 읽기를 하면 좋겠다. 자기만의 해소법이 생기는 게 독서다.”
함께 만들고 같이 누리는 시간이 된다면
책을 많이 읽고 토론을 즐겨한 사람들이 ‘독서토론 진행자 과정’에 신청했을 것이다. 전문가 못지않은 깊이 있는 독서가도 있을 수 있고, 기존에 여러 독서모임에서 활동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제 막 독서토론에 눈을 뜨고 새로운 날개를 달고 싶은 사람도 있다. 책에 대한 기본 애정은 있지만 방법을 몰라서, 혼자 책을 읽으면서 답답한 부분을 해소하고 싶은데 어찌 해야 되는지 몰라 온 사람도 있다.
패널이 아닌 구경하는 사람으로 토론을 지켜보며 부러움도 있었지만 약간의 소외감, 공부 못하는 학생의 심정이 조금 이해가 갔다. 잘하고 싶으나 어디부터 시작을 해야 될지 몰라서 주저하는데 아무도 손을 잡아주지 않으면 먼저 손을 내밀긴 어렵다. 적극적인 자세와 열린 마음이 필요함도 알겠으나 지식의 파편들이 오고가는 공간에서 나의 모자람을 드러내긴 결코 쉽지 않다. 4각의 모서리 있는 책상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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