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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수원시 평생학습관 체험기

작성자
김선형
작성일
2017-12-03
조회수
444
< 수원시평생학습관 체험기 > 조선 사회는 500여년 동안 거의 변화나 발전없이 정체되고 고착된 사회였다. 상하 존비 귀천에 의하여 양반은 하늘이고 상놈은 땅이고, 남자는 하늘이고 여자는 땅이라는 것이 마치 하늘의 거스를 수 없는 이치라고 주장하는 성리학의 정명에 의하여 사회의 모든 것이 통일되어 단순하고 획일적으로 구조화되어 상전에 의한 하인의 무조건 복종이라는 극단적인 상명하복의 문화가 형성되었다. 조선시대에는 10대 청소년에게 사춘기가 없었다. 청년문화가 아예 없었다. 고의적으로 사춘기를 겪지 않게 만들었다. 남녀칠세부동석이라 하여, 남녀를 7세면 이미 성인 취급하고 조혼을 통하여 일찍 성생활을 할 수 있는 부부관계를 맺어준 것이다. 예를 들어 조선의 왕들은 왕이 되기 전에 대개 열 살을 전후해서 결혼하였다. 세종 12세, 문종 12세, 단종 14세, 세조 12세, 예종 11세, 성종 12세, 중종 12세, 인종 10세, 선조 18세, 인조 16세, 효종 13세, 현종 11세, 숙종 11세, 경종 9세, 영조 11세, 정조 9세, 순조 13세, 헌종 11세, 철종 21세, 고종 15세. 순종 9세. 왕이고 양반이고 간에, 조혼을 통해서 이른 성경험과 성생활을 누리게 하여 성욕의 만족을 억압하여 승화하거나 뒤로 미룰 필요없이 즉각적으로 만족을 얻을 수 있음으로 하여, 오이디프스 갈등이 다시 되살아나는 사춘기의 격렬한 반항을 겪지 않고 예방함으로써 사회의 변화를 차단할 수 있었던 것이다. 사춘기 젊은이들의 반항에 의하여 생기는 세대갈등을 회피함으로써 상명하복을 지탱하는 삼강오륜에 의해 지배되는 조선사회의 급작스런 변화와 발전을 차단할 수 있었던 것이다. 조혼제도와 축첩제도를 두어 양반 사대부들에게 거의 무제한의 성적 만족을 어려서부터 제공하여 충동적이고 자기중심적이고 착취적인 남성우월적인 나르시시즘적인 양반의 인격이 형성된 것이다. 사랑이나 자애로움, 섬세함이나 화려함, 부드러움이나 양보,배려,타협같은 긍정적인 여성성은 천시되고 경멸되고, 과부재가 금지법이나 내외법에 의한 칠거지악이나 소박으로 무자비하게 여성을 구속하여 수동성과 피학성만 극도로 키워 놓았다. 그래서 우리의 문화는 한의 문화다. 나는 우리의 전통 가락만큼 슬픈 음악을 들어 본 적이 없다. 정말 가슴 아픈 일이다. 정신분석에 의하면 인간의 마음은 이드, 자아, 초자아의 세 역할자로 나누어 설명하면 정상과 비정상적인 것을 종합하여 잘 설명할 수 있다. 이드는 마음으로 하여금 활동하지 않으면 안되게끔 동기를 제공하는 힘으로써 성욕이나 공격욕, 식욕을 예로 들 수 있다. 배가 고프면 음식을 찾는 활동을 하게 되는 것이다. 자아는 이드를 현실을 고려하여 만족시켜 주기 위해 발달하는 마음의 부분이다. 자아가 잘 발달한 사람은 사랑할 수 있는 능력과 일 할 수 있는 능력이 잘 발달한다. 역으로 사랑할 수 있는 능력과 일 할 수 있는 능력이 잘 발달한 사람은 자아가 잘 발달하여 자아가 강한 사람이다. 사회는 수많은 사람이 같이 살아야 하기 때문에 해야할 것과 하지 말아야 할 것, 상과 벌과 보상과 처벌의 체계, 자부심과 죄책감과 같은 것을 느끼게 하는 도덕 체계로서 개인의 마음에 초자아를 내면화시킨다. 초자아가 건강하게 잘 발달한 사람은 고도로 도덕적이며 정의롭고 공동체를 위하여 자발적으로 자기를 희생하며 헌신하는 사람이 될 것이다. 조선시대에는 조혼이나 축첩제도등으로 인하여 자아가 잘 발달하지도 않은 어린 나이에 즉각적인 성욕의 만족을 얻을 수 있었기에, 성욕의 만족을 뒤로 연기하고 승화시킬 수 있는 충동조절의 능력을 발달시킬 수 없었다. 정신분석에서 자아의 성숙을 위해 반드시 필요한 이차적 과정이 발달하지 못하여 현실검증력이나 성숙한 대상관계를 맺을 수 있는 능력이나 고도로 논리적이거나 상상력이 풍부한 사고기능이나 승화같은 성숙한 방어가 발달할 수 없었던 것이다. 게다가 무술이나 신체단련같은 운동능력도 천시했고, 예술도 천시했기에 더더욱이나 자아의 다양한 기능이 골고루 발달할 수 없었고 통합하고 종합하여 조직화하는 능력은 발달하지 못했다. 조선의 지배계급의 자아기능과 초자아기능이 복잡함과 다양성을 감당하고 조정할 수 없었기에, 조선은 성리학의 삼강오륜으로 사회의 모든 것이 극도로 단순하게 획일화되고 통일화되었던 것이다. 그런 단순하고 획일화된 사회는 또 다시 상명하복에 빨리빨리 즉각적으로 복종하는 즉각적인 문화에 어울리는 단순하고 충동적인 자아를 가진 사람을 필요로 했다. 결국 극단적인 상명하복의 사회가 필요로 하는 인격이 형성되어, 그런 인격은 또 다시 그런 획일화되고 단순한 사회밖에 만들지 못하는 악순환이 맞물려 반복되는 구조를 형성한 것이고, 그것이 지금까지 지속되고 있는 것이다. 을유문화사에서 나온 프로이트의 ‘성에 관한 세 편의 해석’ 에 실린 라이무트 라이헤의 해제를 인용해 보겠다. “ 마리오 에르트하임은 비교 연구를 통해 선사시대의 원시사회에서 청소년기가 현대 산업사회의 청소년기의 과정과 다르게 진행된 것을 밝혀냈다. 정신분석적 청소년연구의 진로를 바꾸어 놓은 이 연구의 결론은 정체된 문화에서 역사적 역동을 피하는 일은 오직 청소년기의 타고난 혁신적 잠재력을 억압함으로써만 가능하다는 것이다. 이런 문화에서 성년의식은 젊은이가 그들의 문화를 존재하는 그대로 변함없이 지속되는 것을 결정한다는 의미를 갖는다. 클로드 레비스트로스의 구조주의적 고찰방식에서 보았을 때 이런 사회에서 모자라는 것은 역사성이 아니다. 오히려 이들은 역사가 역동성에 의하여 바뀌는 것에 대하여 절망적인 저항을 시도하고 있다. 사회비판이론으로서의 정신분석이라는 새로운 지평을 열어놓은 에르트하임은 다음과 같은 결론에 도달한다. ‘문화를 변화시키려고 하는 힘은 문화에 적응하고 그것을 보존시키려고 하는 힘과 마찬가지로 인간에게 유전적으로 주어진 것이다.인간이 청소년기를 가졌기 때문에 세계는 역사적인 것이다.’ “ 현대 한국 사회에 있어서도 조선시대와 마찬가지로 사춘기의 반항이나 청소년기의 창조적이고 혁신적인 잠재력은 위험한 것으로 여겨져 무자비하게 억압된다. 유치원에 다닐 때부터 서울대에 가기 위해 암기식, 주입식 교육에 의해 즐거워야할 공부가 고문이 된다. 영어 단어 외우고 수학 문제 풀고, 끊임없는 시험에 시달린다. 입시지옥, 고교야간자율학습같은 제도가 조선시대에 조혼이 사춘기의 반항을 예방했던 역할을 하고 있다. 사춘기의 반항을 없애 극단적인 상명하복의 문화를 상처없이 존속시키려 하고 있다.그리하여 여러 가지 중요한 자아 기능이나 건전한 양심이 발달할 수도 없으며, 오로지 상명하복의 빨리빨리 복종하는 항상 바삐 서두르는 즉흥적인 문화, 앞을 내다보고 공동체를 위해 자발적으로 헌신하는 문화가 아닌 오로지 자기와 자기 가족을 위해서만 자발성을 보이는 극단적인 이기주의의 문화가 한국사회를 지배하게 된 것이다. 복잡하고 다양한 것을 통합하고 종합할 능력이 없는, 분열이라는 원시적인 방어기제를 주로 사용하는 단순하고 황폐한 자아를 가진 승화의 능력도 없는 병든 인격을 똑같은 모양으로 찍어내는 공장이 되어 버렸다, 한국의 학교는! 한국 사회가 무언가 크게 잘못되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많고, 개선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많다. 나는 수원시 평생학습관에서 그런 변화를 추구하는 사람들을 많이 만났다. 특히 자신이 받아온 한국의 주입식 교육에 실망하고, 고교야자로 대표되는 강제로 주입되고 억지로 하지않으면 안되었던 고문인 공부가 아닌, 진정으로 마음 속 깊은 곳에서 샘솟는 지적호기심과 갈망을 채우기 위해 자발적으로 평생학습관으로 공부하러 오시는 분들과 같이 자유롭게 토론하며 공부할 수 있는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한국의 학교교육은 심지어 대학교육조차 암기식의 단편적이고 파편적인 지식만을 주입시켜 자아기능 중에 주로 지능만을 편협하게 발달시키고 사랑하며 일하고 인생을 즐기며 사는 데 필요한 중요한 다른 자아기능의 발달은 억제하여, 그러다보니 복잡하고 다양한 것을 통합하고 종합하여 세상을 이해하고 적응하는 자율성이 손상된, 수동적이고 피동적인 인격을 가진 사람을 길러낸 것이다. 결국 그런 단순하고 융통성없는 인격들로 구성된 사회도 정체되고 단순, 획일화되어 다시 그런 상명하복에 무조건 복종하는 인격을 필요로하는 구조화된 악순환에 빠지고 말았다. 수원시 평생학습관에서 내가 지금 열심히 참여하고 있는 모임은 ‘삶을 쓰다’라는 글쓰기 모임, 독서토론 모임인 ‘장독’, 그리고 영화를 보고 자유롭게 이야기 나누는 ‘영화수다’라는 모임이다. 이 모임에는 강제에 의해, 억지로 나오는 사람은 없다. 목마른 사람이 타는 목마름에 자발적으로 물을 찾듯이 자발적으로 공부하고 싶은 마음에 열정을 가지고 참여하는 사람들로 공부모임들을 꾸려가고 있다. 다양한 의견과 경험을 나누며, 심지어 엉뚱하고 뚱딴지같은 의견까지 자유롭게 주고받으며 새로운 지식을 얻는 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서로 배려하고 관심가지며 감정적으로 성숙해가는 성숙체험까지 함께 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것이 산 교육이 아닐까? 그래서 수원시 평생학습관이 수원시에서 뿐 아니라 한국사회에서 매우 중요한 실험적이고 혁신적인 학습의 장으로서의 역할을 개척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애써주시는 학습관 선생님들과 강좌를 진행하시는 강사님들과 세미나에서 함께 공부하며 성장하는 동료들에게도 감사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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